- 사회적기업 육성사업 선정
- 학생이 쓴 글 종이 출력 기계
- 시부터 단편소설 70편 등록
- 하루 평균 250명 이용 ‘인기’
- 인하대 설치 등 보급 확대 중

“학업과 취업준비 등에 지친 마음이 따뜻한 시 한 편으로 녹더라고요. 이 경험을 다른 친구들과 나누고 싶어 ‘글 자판기’를 만들었죠.”

	글 자판기를 만든 대학생 창업팀 ‘소프터’ 임직원들은 “대학을 넘어 도시철도역과 관공서 등에도 자판기를 보급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왼쪽부터 주연경, 강경민, 최상인, 위수빈 씨.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부산대학교 새벽벌 도서관에 자리 잡은 글 자판기 ‘한바닥’이 취업준비생의 고된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글 자판기는 학생이 직접 쓴 글을 손바닥만 한 종이에 출력해 주는 기계로 하루 평균 250여 명의 학생이 이용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렇듯 대학생의 마음을 울리는 글 자판기는 또래 대학생 창업팀 ‘소프터’가 만들어 주목받고 있다. 창업팀 소프터는 부산대 재학생 최상인(26)·위수빈(여·23)·주연경(여·24) 씨와 영남대 재학생 강경민(25) 씨로 구성됐다.

소프터 팀은 지난해 3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주최한 ‘사회적기업 육성사업’ 공모전에 도전하기 위해 뭉쳤다. 사업아이템의 모티브는 프랑스의 도시철도역에 설치된 ‘쇼트 에디션’이다. 아이디어를 제공한 주연경 씨는 “글 한 편에서 위로받은 경험이 많은데 학업에 치이다 보면 책 한 권 분량을 읽기는 부담스러웠다. 딱 한 페이지의 글만 필요한 상황에서 프랑스의 글 자판기에 대해 알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공모전 선정 이후 소프터 팀은 모두 지난해 1년 동안 휴학에 돌입했다. 이들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사무실에 모여 글 자판기 구현에 머리를 맞댔다. 공모전 당선보다 사업 아이템 구현이 더 힘들었다는 최상인 대표는 “공모전 준비는 한 달 걸렸는데, 기계 구현엔 4개월 걸렸죠. 여러 번 실패하며 비용도 1000만 원 넘게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지금의 글 자판기가 생겨났다. 이용자가 자판기에 등록된 70편의 글 중 하나를 선택하면 가로 8㎝의 영수증 재질 종이에 글이 인쇄된다. 자판기에 들어있는 글은 시부터 1500자 분량 단편소설까지 다양하다. 인쇄 비용은 무료다.

소프터 팀에게도 어학연수, 토익 공부 등 스펙 쌓기를 뒤로 한 채 사업에만 몰두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누가 대체 글 자판기를 이용하겠느냐”는 주위의 평가는 소프터 팀을 흔들었지만 소프터 팀은 사업의 성공을 확신했다. 위수빈 씨는 “같은 대학생으로서 이 기계가 또래 친구들의 마음을 울릴 거라고 생각했다”며 “최근 흑백 즉석 사진기 등 아날로그 아이템이 20대에게 인기를 얻고 있어 손바닥만 한 종이에 출력된 글 한 편도 먹힐 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소프터 팀의 확신은 또래 대학생의 취향을 저격했다. 글 자판기는 학생들이 직접 쓴 글로 채워지는데 ‘한바닥 글쓰기 공모전’을 통해 수집된 작품은 이미 1000여 개에 달한다. 공모된 작품 전부 글 자판기에 등록되는 건 아니다. 웹소설 작가로 활동했던 강경민 씨가 글을 거른다. 강경민 씨는 “지금까지 보내온 글들을 전부 읽었다”며 “1000여 개의 글 중 3점 이상을 받은 글을 팀원에게 보여주고 함께 총점을 매겨 글 자판기에 싣는다”고 설명했다. 최근 소프터 팀은 글 수집 범위를 넓혀 독립 혹은 대형출판사와 협력해 기성 작가의 글도 제공하기로 했다. 현재 글 자판기에 등록된 글은 70여 개다.

소프터 팀의 최종 목표는 글 자판기를 확산해 더 많은 사람에게 글 한 편이 주는 치유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소프터 팀은 다음 달 인하대에 글 자판기를 설치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최상인 대표는 “서울 소재 대학과도 현재 협의 중이다”며 “대학교에서 뻗어 나가 도시철도역과 관공서 등에 보급해 더 많은 사람이 일상 속에서 작은 치유를 했으면 좋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김해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