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 전 인문학 카페 인수
- 학생 발길 끌 방법 찾다가
- 청춘 위로 글 입소문 나면서
- 인문·사회 집회객에 인기
- 최근 두세 줄 글 모아 책 출간
- 기타·시 관련 교실도 열어

“너의 우울이 길다. 후회가, 체념이, 무기력이 너무 길다. 보아라! 큰바람이 불었고, 세계는 그대로가 아니냐. 네 안에서 부는 바람에 너는 너무 오래 흔들린다.”

황경민 헤세이티 대표는 “카페 이름인 ‘헤세이티’는 ‘이것임, 개별성’을 의미한다. 지금 이 순간으로 해석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서순용 기자

지난 8일 부산대 앞 ‘헤세이티’ 카페 주인장 황경민(49) 씨가 자신의 책 내용 일부를 소개했다. 황 씨는 2012년부터 부산대 앞에서 카페를 열고 입간판에 글씨를 써 청춘들을 위로하고 있는 자칭 ‘야매 시인’이다. 5년간 하루에 2편씩 2000여 개의 입간판 글을 쓴 황 씨는 이 중 250개를 추려 300쪽 분량의 책 ‘지금, 바로, 여기!’를 펴냈다. 황 씨는 “입간판에 쓴 짧은 문장을 모아 2013년부터 책을 내기로 했는데 4년이나 늦어졌다. 사람들에게 ‘지금 바로 여기가 의미 있는 곳’이란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소개했다.

처음에는 카페 홍보를 위해 입간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지역활동가 사이에서 유명한 헤세이티는 인문학 관련 강연과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집회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초기에는 그렇지 못했다. 애초 인문학공동체를 지향하며 운영했던 카페를 인수했던 터라 좀처럼 손님이 오지 않았다. 황 씨는 어려운 인문학이 가득한 이곳에 사람 냄새나는 친근함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전지를 펼쳤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썼다. 그날마다 있었던 사회 이슈나 일상적인 일에 대한 느낌 등을 적었다. 두세 줄의 글은 2분이면 뚝딱 완성됐다. 이렇게 글을 써 카페 입간판에 붙였다. 입간판 글 가운데 가장 유명한 ‘너의 우울이 길다’도 이렇게 쓰였다.

2012년 가을 무렵 모두가 대형 태풍이 오고 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마침 그날 한 대학생이 우울함을 호소하며 카페에 찾아와 그와 상담을 했다. 이튿날 태풍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태풍이 오든 말든, 세상은 그대로 돌아갔다. 문득 전날 학생이 떠오른 그는 위로의 글을 입간판으로 풀어놓았다.

그는 “누구나 공감하기 쉽고 친근하게 느끼게끔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과 생각을 글로 옮겼다. 사투리는 맛깔나게 읽을 수 있도록 입말대로 썼다”고 설명했다. 입간판 글이 늘어나자 입소문과 SNS를 통해 여러 사람에게 알려졌다. 2년 전에는 부산대 총장 직선제 투쟁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술값·찻값을 50% 할인해준다는 글을 적어 화제를 모았다.

황 씨는 입간판으로 쓴 글귀로 노래도 만든다. 어떤 글을 쓰고 난 뒤 운율이 보이면 그 말에 기타 코드를 붙이는 방식이다. 벌써 70여 곡이 완성됐다. 부산 사투리에 높낮음이 있어 기타 코드를 붙이기가 편했다. 내친 김에 한 발 더 나갔다. 누구나 기타로 작곡을 할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어 ‘야매 기타 교실’을,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히 할 수 있는 ‘불법 무단 사설 야매 시인학교’도 열었다.

황 씨는 “옛날에는 모든 사람이 대중문화를 직접 만들고 소비했는데 요즘은 등단이나 오디션을 거친 제작자가 만든 것을 대중이 소비하는 방식이다. 예술이 어렵지 않다는 것, 누구나 예술을 하고 즐길 수 있다는 걸 나누고 싶다”고 강조했다.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황 씨는 서울로 대학을 갔다. 2012년 다시 부산으로 내려온 그는 헤세이티를 거점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평소 궁금했던 헤세이티의 뜻을 물었다. 그는 “헤세이티(haecceity)는 ‘이것임, 개별성’이란 뜻으로 책 제목처럼 ‘지금 이 순간’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김진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