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비' 수준 저임금 부조리로
- 지역대생 지역기업 기피 심각
- 하청업체 대기업 핑계 말고
- 인재 영입 환경 적극 개선
- 급여·복지 확대에 신경써야

최근 정부는 공공기관, 지방공기업이 블라인드 채용을 하는 청년 고용 개선안을 선포했다. 입사지원서에 학력과 출신지 가족관계 신체조건 등을 기재할 수 없으며, 면접관 역시 지원자에게 관련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지역대학 졸업자들은 아직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이런 변화가 민간까지 확산돼 그간 뿌리 깊었던 취업 시장의 병폐를 고칠 수 있겠냐는 의구심이 있기 때문이다.

부경대 박정은 씨는 "기업이 사람을 부품처럼 여기지 말고 인간존중 차원에서 임금과 복지를 늘렸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14일 부경대에서 만난 한 근로장학생은 "이런 불신의 배경에는 그간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고용의 질은 따지지 않고 양적인 확대에만 골몰한 전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한국조사기자협회 주최 제5회 대한민국 신문논술대회에서 교육부 장관상인 대상을 받은 부경대 국제통상학부 4학년 박정은(여·24) 씨. 그는 "흔히 4년제 대학을 졸업하면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다. 그런 기대가 어느 정도 충족되는 취업 시장을 바란다. 한 번 실패해도 기회가 있는, 성별 출신 등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씨는 '고용절벽사회에서의 일자리 창출 방안과 고용의 질 향상'을 주제로 열린 대회에서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고용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노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제목의 논술문으로 고등·일반부 통틀어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

박 씨는 "개인이 기업에 고용돼 일할 때 일회성으로 사용되는 느낌을 받지 않게 하자는 게 주제였다"며 "대다수 직장인은 취업 시장에서 주체성이 없다. 그런 개인은 스스로 주체성을 버린 게 아니라 사회나 고용주가 주체성을 가질 수 없게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노비라고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직장 내 개인이 더 존중받으면 노비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정부 일자리 정책이 고용의 질 안정성 복지 급여 환경 등 요소를 모두 만족시키려는 쪽으로 도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 달 졸업을 앞둔 박 씨 역시 '취준생'이다. 그는 취업 동아리 활동을 하며 상당수 지역기업의 급여·복지 수준은 '인간 존중'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역대생들은 지역에서 일자리를 많이 찾습니다. 해당 기업들의 초봉은 1800만~2200만 원입니다. 최소 2400만 원은 받아야 물가도 감당하고 저축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취준생의 인식과 고용시장의 조건이 상당히 차이가 나는 셈입니다. 이런 차이를 홀로 감당해야 하니 노예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결국 지역기업이 사람을 부품처럼 여길 게 아니라 인간 존중 차원에서 임금과 복지를 늘려야 한다고 박 씨는 글을 통해 주장했다. 그는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일거리를 많이 빼앗기는 데다 수익이 많지 않아서 임금과 복지혜택을 개선할 여력이 없다고 말한다. 그 실상을 파헤쳐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인근 지역만 보더라도 중공업·자동차 대기업의 하청업체가 수두룩한데, 이 중 일부는 직원의 임금을 후려치기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사내보유금을 늘리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여력이 되는 업체들이 중소기업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마땅히 줘야 할 임금을 주지 않으면 취업 인력이 대기업 공무원시험으로만 몰려 지역기업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박 씨는 "여력이 있는 중소기업이 인간 존중의 차원에서 급여 복지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박 씨는 공기업, 공단 쪽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눈앞의 목표는 취업일 수밖에 없다. 기업의 이익을 내기 위해 활동하는 것보다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승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