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첫 창조형 비영리 법인
- 2015년 부산대병원내 개원
- 1997년엔 정자은행 설립
- 16개 난임치료기관과 협업
- 중앙정자은행 부산유치 추진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신생아가 너무 많아 출산제한정책 구호가 난무했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세월이 흘러 저출산 고령화 극복이 국가적 과제로 등장한 지 오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취업과 결혼이 늦어지면서 임신을 원해도 여성 또는 남성 쪽의 문제로 잘 되지 않는 난임 부부가 꾸준히 늘고 있다. 이런 저출산과 난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이 2015년 12월 부산대병원 융합의학연구동 5층에 문을 열었다.

박남철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 이사장이 공공정자은행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밝히고 있다.

이 연구원은 정자은행 연구를 선도하는 세계 최초의 창조형 비영리 공익법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박남철(61)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 이사장(부산대병원 비뇨기과 교수)은 4일 "공공정자은행은 국가적 네트워크를 갖춘 정자 동결보존과 공급망을 완성하고 생식의학연구 기반을 조성해 난임 부부에게 건강한 정자를 제공함으로써 가임의 기회를 주는 역할을 하지만 아직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임신을 원하는 부부의 약 15%가 난임으로 고통받고 있어요. 남성 난임 환자의 20~30%가 입양이나 비배우자 인공수정이 필요한 1차성 정자형성 장애나 무정자증 환자예요. 그 수는 2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난임 부부에게 정자를 제공할 공공정자은행 시스템이 없다 보니 SNS를 통한 불법 정자 매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죠. 병원을 통한 공식적 정자 공여는 보상이 없고 성병검사 등 불편한 점이 뒤따르니까요."

박 이사장은 1997년 4월 1일 당시 윤수인 부산대 총장, 유총일 부산대병원장, 윤종병 비뇨기과 과장과 함께 국내 최초의 정자은행을 세우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며 인연을 맺었다. 부산대병원 정자은행은 올해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은 설립 후 짧은 기간 동안 왕성한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다. 연구원은 공공정자은행 네트워크를 구축해 저출산 극복을 돕기 위해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정자 기증·수증 및 보관의 체계적 관리방안 용역'을 한 데 이어 올해 부산시의 '부산지역 공공정자은행 ICT(정보통신기술) 네트워크 구축 사업'과 복지부의 '생식세포 기증·수증의 효율적 관리체계 구축을 통해 가이드라인을 적용한 시범운영 및 향후 정책방향 제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올해 수행 중인 부산지역 거점 공공정자은행과 16개 난임치료기관 간 네트워크 구축 사업을 토대로 내년에는 전국 거점 공공정자은행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사업을 국비지원사업으로 신청해 추진할 계획"이라며 "그러면 전국 공공정자은행 네트워크의 중앙정자은행을 부산에 유치하고 부산을 난임치료 관련 의료산업 메카로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더불어민주당 전재수(부산 북강서갑) 의원이 지난달 국가가 '공공난임센터'를 지정해 운영하는 내용의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데 대해 공공정자은행 네트워크 구축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다. 공공난임센터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정자은행은 정자를 채취한 뒤 동결보존액과 혼합해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 탱크 속에 얼려 보관한 뒤 필요할 때 녹여 인공수정, 시험관아기 등 보조생식술이나 생명과학 분야 연구에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박 이사장은 "부산대병원 정자은행은 최장 13년간 동결보관한 정자로 임신에 성공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관절제술 같은 영구피임술이나 난임을 유발할 수 있는 수술, 항암화학요법·방사선치료처럼 고환 독성을 유발하는 치료를 받기 전에 자신의 정자를 동결보존함으로써 가임력을 보존할 필요가 있어요. 외국의 경우 해외에 파병하기 전에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부상과 전사에 대비해 군인의 정자를 정자은행에 보관한다고 들었어요. 유비무환이죠."

박 이사장은 부산 동아고와 부산대 의대를 졸업했고 부산대병원장을 역임했다.

오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