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대문 보수 등 한달새 60여 곳
- 30년 건설현장 경험에 익숙
- 오래된 집 많아 고칠 것 많아
- 홍보안돼 의심 눈초리받기도

"내 손으로 막힌 하수구를 뚫고, 깜박이던 형광등을 켜고, 안 나오던 물이 나오는 걸 지켜보는 게 정말 재미있습니다. 지켜보는 이웃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걸 볼 때 제일 행복합니다."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에 '뚝딱뚝딱 맥가이버'가 나타났다. 사하구 감천2동 마을지기사무소 만능수리공 성민관(59) 씨다. 그는 전화를 받으면 바로 달려가 형광등 교체, 방범창 수리, 누수 차단, 대문 수리, 타일 보수, 변기·싱크대 뚫기는 물론 오래돼 못 쓰는 집안 살림에 새 숨결을 불어넣는다. 재료비 2만 원 이하의 간단한 수리와 부품 교체는 돈을 받지 않는다.

지난달 1일 문을 연 마을지기사무소에서 만물수리공으로 일하기 시작한 그가 이렇게 한 달 동안 수리를 마친 집만 60여 곳에 달한다. 하루에 두 집 정도 수리를 도운 셈이다. 부품을 구하기 위해 하루에도 열 번 넘게 가파른 비탈길을 올랐다.

30년 가까이 미장 등 건축 관련 일을 해온 덕에 수리공 일은 금세 손에 익었다. 성 씨는 "만물수리공이라는 이름 때문에 못 고치는 게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많았다"며 "다행히 건설 현장에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게 있는지 일이 생길 때마다 지혜가 생겼다. 월급은 활동비 정도 받지만 보람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그동안 감천문화마을 대부분은 홀몸노인이 오래된 주택에서 살았던 탓에 형광등이 깜빡여도 애만 태웠다. 그렇지만 성 씨가 나타나 집안 살림을 척척 고쳐주자 마을 주민은 든든하다. 그는 "수리를 마치고 집을 돌아보면 고쳐야 할 것투성이다"며 "마음 같아선 모두 손보고 싶지만 일정이 빡빡해 돌아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성 씨는 만물수리공 일을 시작한 한 달 전만 해도 일감이 없어 고민했다. 집집이 다니면서 고칠 물건 없느냐고 물었지만 '고칠 게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주민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성 씨는 고심 끝에 마을 통장에게 홍보를 부탁했다. 통장이 직접 각 가정을 방문해 성 씨가 사하구에서 채용한 수리공이라는 사실을 알리자 그때부터 수리를 의뢰하는 전화가 이어졌다.

이처럼 바쁜 그는 최근 비수기를 맞았다. 하루에도 십여 통씩 그를 찾던 전화가 눈에 띄게 줄었다. 성 씨는 "이상하다 싶어 마을 주민에게 고칠 물건이 없는지 물었다. '더운 데 부르기 미안해서 참고 있다'는 말에 정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경남 진주 출신인 성 씨는 2008년 감천문화마을에 터전을 잡았다. 성 씨는 지인으로부터 살기 좋은 동네가 있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감천문화마을로 왔다.

처음 둘러볼 때는 비탈길이 워낙 많아 놀랐지만 부산항과 바다가 보이는 경치에 마음을 뺏겨 눌러앉았다. 일용직 일을 해오다 지자체에서 만물수리공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해 뽑혔다. 성 씨는 "수리공으로 각 가정을 방문해 보니 '어떻게 이런 방에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려운 이웃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마을지기사무소 만물수리공은) 달동네에 꼭 필요한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부산에는 성 씨와 같은 만물수리공이 마을지기사무소마다 한 명씩 있다. 마을지기사무소는 60만 낙후 단독주택 지역에 공동주택 수준의 주택유지·관리 서비스와 주민 생활편의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각 기초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곳이다. 사하구 감천2동 외에 마을지기사무소가 들어선 마을은 ▷중구 산리마을회관 ▷동구 호랭이(안창)마을회관 ▷부산진구 와요행복센터 ▷해운대구 장산길 행복마을 ▷해운대구 담안골 ▷사상구 괘내마을 행복센터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