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과 보강, 원스톱 진료 모색
- 세미나 등 빡빡한 공부모임
- 동료와 국내외 400편 논문
- 환자 수·장비 '종합병원급'

진료 종료 후의 만남이라 이내 배꼽시계가 울렸다. 인근 단골 선어횟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숙성된 두툼한 선어회가 앙증맞은 도마 위에 수북하다. 소주잔이 자연스럽게 술술 돌았다. '각 1병'이 넘자 마지막으로 한 병만 더하자고 했다. 취기도 올랐다. 그도 사람인지라 속내를 드러내는 등 인간적인 풍모도 내비쳤다. 대가와의 만남은 예상외로 유쾌했다.

부산 서구 충무동에 위치한 김용기내과의원의 김용기(66) 원장. 말이 '의원'이지 실제로는 '종합병원'급이다. 하루 평균 환자 수(800~900명)가 이를 대변한다. 아마 전국에서 가장 많은 환자가 찾는 의원일 듯싶다. 원래 이곳은 부산대병원 은사인 김동수(91) 교수가 1992년 개원했다. 은사는 갑상선 질환을 주로 치료했지만 2010년 병원을 물려받은 김 원장이 내분비 전문 클리닉으로 확장, 재개원했다.

김 원장은 원래 순환기내과에 관심이 많았다. 레지던트 시절 논문도 그쪽으로 많이 썼다. 그는 군 복무 전 모 큰 병원의 순환기내과 자리를 보장받았다. 운명의 장난일까. 군 복무 중 어느 날 병원에 한 번 들르라는 은사 김 교수의 전화를 받았다. 후방 근무여서 가능했다. 곧 내분비과에서 교수 공채가 있으니 원서를 내라는 것이었다. 당시 내분비과는 변방인 데다 월급이 약속된 병원에 비해 형편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넣었는데 '제대 즉시 발령'이라는 조건으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수석졸업자를 놓치지 않으려는 학교 측의 배려였으리라. 당시 영호남지역 병원에서 내분비 전문의는 5명 정도에 불과했다.

사실상 끌려왔지만 내분비 쪽도 재밌었다. 신명나게 공부했다. 내분비대사내과, 핵의학 전문의도 잇따라 땄다. 열심히 하니 교환교수 기회도 찾아왔다. 홍콩대 의대에서 갑상선 질환, 국제원자력기구(IAEA) 교육센터가 있는 인도 뭄바이에선 호르몬 측정법, 미국 토머스 제퍼슨 의대에선 당뇨 리서치법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개원의로 오게 된 사연도 뜻밖이었다. "정년이 5년 남은 어느 날 갑자기 병원을 맡으라는 거예요." 당시 2개월만 더 출근하면 명퇴위로금으로 목돈을 쥘 수 있었지만 고령인 은사의 부탁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간 이끌어준 데 대한 보답이었다.

김용기내과는 공부하는 병원이었다. 사무실 그의 책상에는 읽다 만 저널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알고 보니 빡빡한 스케줄의 공부 모임 대비용이었다. 돋보기 끼고 책보지 않으려면 젊었을 때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주 금요일 진료 후엔 자체 세미나, 매달 격주 목요일엔 전문가 초청 특강, 매주 수요일 오전 7시20분엔 부산대병원 내분비내과 주최의 최신 저널 콘퍼런스에 8명의 내분비 전문의 전원이 참석한다. 그간 이곳에서 SCI급을 비롯한 국내외 저널에 400여 편 논문을 실은 것도 모두 이런 노력 덕분이다.

"내분비 질환은 갑상선·당뇨·고지혈증·골다공증 등을 주로 다루지요. 얼핏 서로 달라 보이지만 사실 뿌리가 같아요. 이들 내분비 질환은 호르몬의 전신작용에 따라 여러 가지 원인으로 복합적으로 발병하는 경우가 많아 공부를 게을리하면 대응하기가 힘들어요."

검사장비 또한 의사들의 열정에 비례해 갖가지 최첨단으로 다량 보유하고 있다. 방문 환자의 40% 정도가 타지역인 이유는 결국 공부하는 의사와 함께 최첨단 장비 보유에 따른 결과물인 셈이다.

그는 매년 모교인 부산대병원에 상당한 연구비를 지원한다. 하지만 평생 공부가 그의 지론인 까닭에 조건을 단다. 연구 프로젝트 등이 있는 연구자들에 한해서다.

김 원장은 최근 제기되는 갑상선암 환자의 과잉 진료에 대해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국내 질병 패턴도 서구화해 내분비 환자가 늘고 있고 동시에 보편화된 건강검진으로 인해 갑상선결절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며 "일부 과잉 진료의 논란도 있지만 의료환경이 다른 선진국의 가이드라인에 일괄적으로 맞추기보다 환자의 상황에 맞게 수술 등 치료방법이 결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문제는 주로 종양학자나 암 통계 관련 학자들이 제기해왔다"면서 "실제 임상에서는 환자에 따른 맞춤진료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원장의 꿈은 '종합 내분비센터 건립'. 외과수술팀을 보강해 현재 진단, 치료에 그치는 단계를 뛰어넘겠다는 포부이다. 이를 위해 건물 옆에 부지도 이미 사놓았다. 그는 종종 세계적인 종합 갑상선센터가 위치한 일본 도쿄·고베·벳푸를 찾아 벤치마킹한다. 이곳이 전 세계 갑상선 치료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딱히 언제쯤이라 못을 박지 않았지만 그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경남 창원 북면 출신의 김 원장은 마산중·고와 부산대 의대를 마치고 모교 병원에서 28년간 근무했다. 의대 학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