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강덕철 선임기자 kangdc@kookje.co.kr

- 부산 비싼 땅값 탓 제주행
- 주민 2년간 설득 2004년 개관
- 性을 양지로…연인 등 호평
- 요우커 줄이어…하와이 진출

애초에 작업장 겸 갤러리를 마련하려고 했다. 부산 기장군 바닷가 근처를 알아봤다. 그런데 땅값이 너무 비쌌다. 제주로 눈을 돌렸더니 뜻밖에 더 싼 곳을 제주시 근처 '신비의 도로' 바로 앞에서 찾을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 부지를 마련해 미술관을 만들기로 하고 10년 동안 작업한 작품들을 옮길 계획을 세웠다. 그때 지인이 하나둘 '그 좋은 걸 혼자 두고 보려고 하느냐'며 만인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 것을 권유했다. 여기에 넘어가 2년간 사전작업을 거쳐 건립에 들어가 2004년에 문을 연 것이 제주러브랜드다.

성(性)을 주제로 한 테마조각공원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진 제주러브랜드 관장이자 조각가인 부산교육대학교 정안수(55·미술교육과) 교수 이야기다. 앞서 지인들이 말한 '그 좋은 것'은 바로 정 교수의 작품인 '에로티시즘 조각'이다. 그렇게 시작한 제주러브랜드는 이제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한 번은 꼭 찾는, 두 번 세 번 거듭 찾기도 하는 제주의 명소가 됐다. 그 덕분에 그는 본업인 대학교수보다 '관장'으로 더 유명세를 날린다.

정 교수는 "10여 년간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작업해온 결과물을 작은 공원 같은 걸 꾸며 전시할 생각이었는데 일이 커졌다. 규모도 처음엔 3300㎡(약 1000평) 정도의 작은 규모로 하려고 했는데 지금의 러브랜드는 4만㎡(약 1만2000평)로 12배나 넓어졌다"고 말했다. 박물관이나 기념관이 많은 제주에서도 처음인 '야한' 전시시설을 짓다 보니 지역의 반발도 만만찮았다고 한다. 정 교수는 "개관은 2004년이지만 실질적인 제주 생활은 14년째다. 2년에 걸쳐 사전작업을 했는데 제주지역 문화·여성단체의 반발이 거세 공청회만 4번을 열었을 정도였다. 기존과 다른 아주 생소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세간에 크게 회자돼 유명해진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음지에서는 즐기지만, 양지에서는 드러내기 꺼리는 주제를 야외에 전시하는 것은 당시만 해도 낯선 일이었다.

정 교수도 "성에 민감해하는 우리 사회에 성의 유머러스한 점을 이해시키는 게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관람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공간이 됐다. 러브랜드의 전시 주제가 성을 주제로 한 유머와 해학인 만큼 항상 관람객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전국 박물관이나 전시관 가운데 이곳처럼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한 러브랜드는 장년의 관광객뿐만 아니라 젊은 부부나 연인에게도 필수 관람지가 됐다. 2008년에는 제주도가 선정한 우수관광사업체에 포함됐다.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를 검색해 봐도 호평이 쏟아진다. 최근엔 인터넷 포털의 제주도 여행 전문카페가 선정한 연인과 신혼부부를 위한 제주도 여행지 추천 5선에 들어갔다. 외국인 관광객도 꾸준히 늘어 중국인 관광객이 2013년에 8만 명 찾았고 지난해는 아직 집계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10만을 넘어서리라 보고 있다.

제주러브랜드의 성공을 바탕으로 정 교수는 외국에 러브랜드를 '수출'하는 일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태국과 중국 등에 추진하다가 무산됐지만, 현재 다시 미국 하와이에 제주와 비슷한 규모로 추진 중이다. 인허가 과정을 마치면 부지를 사들이고 현지 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다. 이와는 별도로 정 교수는 애초에 눈길을 줬던 부산 기장에 러브랜드를 꾸미는 일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직접 부지를 알아보고 있다.

천혜의 자연과 관광 인프라를 갖춘 부산에 러브랜드가 작은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게 정 교수의 생각이다. 정 교수는 "부산은 교육 금융 레저 쇼핑 해양스포츠 등 모든 것이 잘 갖춰진 도시다. 해변마다 다른 성격을 지닌 것은 아주 뛰어난 관광 인프라다. 이런 부산의 관광 인프라 가운데 러브랜드 같은 유쾌한 곳도 있으면 좋으리라 본다. 시민과 관광객이 러브랜드를 찾아 건전하고 유쾌하게 관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 교수는 전북 정읍 출신으로 초등학교 이후 서울에서 생활했다. 홍익대 미술대학 조소과와 대학원 조각과를 졸업했고 1995년 부산교대에 부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