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양대 제공

- 인천 팔미도보다 16년 앞서
- 1887년 초량에서 점등 기록
- 당시 해관장 공문에서 발견

- 정확한 위치에 안내판 설치
- 사진과 기록 더 찾아나서야

"1876년 부산항이 인천항보다 7년 먼저 개항했는데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로 알려진 인천 팔미도등대가 1903년 점등하기까지 부산항에 등대가 없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됩니다."

이 같은 합리적 의심이 안웅희(47) 한국해양대 해양공간건축학과 교수가 등명기를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가 인천 팔미도등대보다 16년 앞선 1887년 부산항에 세워졌음을 뒷받침하는 국내외 사료를 발굴(본지 지난달 28일 자 2면 보도)하는 단초가 됐다.

안 교수는 3일 "몇 년간 찾던 자료를 발견했을 때의 흥분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부산항이 개항한 1876년 10월부터 일본우편선 '나니와마루'호(250t)가 부산~나가사키를 운항하는 등 양국 왕래와 교역이 증가했습니다. 부산해관(세관)은 관세를 거둬들이기 위해 외국 선박이 안전하게 입항할 수 있게 등대 같은 항로표지시설을 설치했을 거라는 가설 아래 고문서와 고지도를 수집해 분석했죠. 올해 2월 이용득 부산세관박물관장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관세청에서 최근 번역·발간한 '1893~1897년 부산세관 공문(DESPATCHES from FUSAN CUSTOMS 1893~1897)' 책자에서 1887년 4월 부산항 등대가 점등됐다는 내용의 부산해관장 헌트가 총세무사(관세청장)에게 보낸 공문을 발견했어요."

안 교수는 "'부산항 항해보조시설(Aids to Navigation in the Fusan District)-등대(Lights)' 공문을 보면 초량 구봉산 도등(導燈)의 위도(북위 35도 7분 18초), 경도(동경 129도 2분), 등명기의 고정·회전 여부(고정식), 가시거리, 등명기 색상(후도등 흰색, 전도등 적색), 해발고도(33m, 15m), 등대 점화연도(1887년 4월)가 상세하게 적혀 있어 체계적으로 관리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국 정부 공식기록매체인 '런던 가제트(THE LONDON GAZETTE)' 1887년 10월 22일 자 기사 등 해외 자료도 여러 건 찾아냈다.

안 교수는 1887년 부산항 등대를 발굴하면서 두 번 놀랐다. "학자들이 우리 등대 역사가 일본 제국주의에 굴복한 침략의 등불이라고 여길 뿐 제대로 연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놀랐어요. 또 부산항대교 개통에 따라 선박이 항내에 진입할 때 교각으로 인한 간섭을 방지하기 위해 부산해양항만청이 지난 5월 구봉산에 설치한 부산항 도등이 127년 전 도등과 항로선상에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점도 놀라워요." 부산해양항만청이 올해 설치한 부산항 등대의 좌표는 북위 35도 7분, 동경 129도 1분으로 1887년의 것과 거의 같다. 그래서 그는 "127년의 세월이 흘러 같은 자리에 서게 된 이들 두 도등의 기막한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1887년 도등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 안내판을 세우고 기념사업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안 교수는 "1887년 등대를 세운 프랑스 출신 피리 제2대 부산해관장 후손을 꼭 찾아가 피리 해관장이 남겼을지도 모를 부산항 등대에 관한 사진과 기록을 구하고 싶다"는 바람도 잊지 않았다.

안 교수는 서울시립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06년 '연필 등대'로 알려진 통영 도남항 문학기념등대 현상설계에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