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家家有酒月舒波·가가유주월서파
명절 중추가 가까우니 성묘하는 이 많고(節近中秋上冢多·절근중추상총다)/ 집집마다 술이 있고 달빛은 물결처럼 퍼지네.(家家有酒月舒波·가가유주월서파)/ 오늘 밤 서로 어울려 오래도록 술을 마시니(相將今夜留連飮·상장금야유련음)/ 도연명이 새벽까지 노래하던 풍류에 견주어 어떠하랴.(何似陶公達曙歌·하사도공달서가)
위 시는 조선 중기의 문신 충재(冲齋) 권벌(權橃·1478~1548)의 ‘추석날 모여 술을 마시며’(秋夕會飮·추석회음)으로, 그의 문집인 ‘충재집(冲齋集)’ 권 1에 수록돼 있다.
오늘이 추분이고 모레는 추석이다. 내일부터 추석 연휴이다. 추석은 예부터 흩어졌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고, 조상의 산소를 찾아 성묘하며, 햇곡식으로 음식을 장만하여 서로 나누던 명절이다. 둥근 보름달 아래 온 마을이 넉넉한 마음을 나누는 날이기도 했다.
2구의 ‘집집마다 술이 있고 달빛은 물결처럼 퍼지네.(家家有酒月舒波)’는 참으로 아름다운 추석 풍경이다. ‘가가(家家)’, 집집마다 술이 있다. 한 해 농사의 수확에 감사하고, 음식을 장만해 이웃과 나누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인정까지 그 술잔 속에 들어 있다. 그 위에 보름달이 떠 있다.
권벌은 달빛이 환하다고 하지 않고 ‘월서파(月舒波)’, 달이 물결을 펼친다고 했다. 달빛이 온 세상을 덮으며 잔잔한 물결처럼 번져 가는 모습이다. 달빛은 가난한 집에도 부유한 집에도, 높은 사람에게도 낮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내린다. 3구에서는 사람들이 그 밤 서로 어울려 오래도록 술을 마신다. 마지막에는 중국 동진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을 불러낸다. 추석날 벗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즐거움을 도연명의 풍류에 견주고 있다.
권벌은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의정부우찬성에 이르렀고, 1547년 양재역 벽서사건 여파로 유배되었다. 평안도 삭주로 옮겨진 뒤 이듬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인생에는 좋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추석에 가족을 생각하고, 떠난 이를 기억하며, 가진 것을 서로 나누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한다. 필자도 추석에 차례를 지낸 뒤 고향에 가 부모님 산소를 찾고 일가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