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重道宸心克配前·중도신심극배전
아름다운 태학에서 친히 제향하는 경년이 다시 돌아오니(瓊堂親祀復庚年·경당친사복경년)/ 도를 높이는 임금의 마음은 옛 성군의 뜻에 짝할 만하네.(重道宸心克配前·중도신심극배전)/ 유학의 교화를 말할 때마다 성화 연간을 일컬었거니와(儒化每稱成化際·유화매칭성화제)/ 우리 임금의 오늘 또한 거의 그에 미칠 만하리라.(吾王今日庶幾焉·오왕금일서기언)
위 시는 자암(紫巖) 남태회(南泰會·1706~1770)의 ‘승정원 가주서인 신(臣) 남태회가 지어 올리다.(承政院假注書臣南泰會製進·승정원가주서신남태회제진)’로, ‘太學享官廳小識幷詩帖(태학향관청소지병시첩)’에 들어 있다. ‘태학향관청소지병시첩’에는 영조의 어제시와 신하들의 갱진시가 함께 전하며, 남태회의 위 작품도 그 가운데 한 수이다.
영조 16년인 1740년 가을, 영조는 성균관 문묘에 직접 나아가 석전을 거행하였다. 왕이 친히 성현에게 제사를 올린 뒤 신하들에게 시를 지어 올리게 하였는데, 당시 승정원 가주서였던 남태회가 위 시를 지었다.
둘째 구의 ‘중도(重道)’ 두 글자는 ‘도를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조선에서 석전은 단순히 공자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례가 아니었다. 학문을 존중하고 교육을 국가의 근본으로 삼으며,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도리를 되새기는 자리였다. 임금이 직접 문묘에 나아가 절을 올리는 행위 역시 학문과 도덕의 가치를 나라의 근본으로 삼겠다는 뜻을 백성에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었다.
남태회는 시에서 성종 때의 유교적 교화를 떠올리며 영조의 석전을 그 전통 위에 놓았다. 옛 선비들은 성현 앞에 절하며 자신이 배운 대로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았다. 학문은 많이 아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실천되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지금도 해마다 봄과 가을이면 향교와 성균관 문묘에서는 정성껏 제수를 마련해 성현들에게 제사를 올리며 학덕을 기린다. 어제(20일) 하동향교에서도 ‘추기석전대제(秋期釋奠大祭)’가 열렸다. 필자도 하동향교의 장의(掌議)여서 참석했다.
시대가 달라졌어도 이 의례에는 배움과 사람의 도리를 소중히 여겼던 옛사람들의 정신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