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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603> 할아버지 담제 날에 유배지 진도에서 시 읊은 노수신

할아버지 신주는 누가 받들어 사당에 모셨을까(神主孰陪祧 ·신주숙배조)

  •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
  •  |   입력 : 2026-09-15 18:29:34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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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제란 담담히 평안으로 돌아간다는 뜻이건만(禫禫平安意·담담평안의)/ 아득하고도 슬픈 마음 가눌 길 없는 아침이네.(悠悠感愴朝·유유감창조)/ 담제의 제상에서는 이제 제기들을 거두었으리니(吉筵應徹豆·길연응철두)/ 할아버지 신주는 누가 받들어 사당에 모셨을까.(神主孰陪祧·신주숙배조)/ 기쁨과 두려움 뒤섞인 마음에 고향 달려가는 혼 끊어질 듯하고(喜懼遊魂斷·희구유혼단)/ 집안이 평안한지 위태로운지 앉아서 마음으로 짐작할 뿐이네.(安危坐臆料·안위좌억료)/ 끝내 황향처럼 부채를 받들어 봉양하지도 못하였으니(終違奉香扇·종위봉향선)/ 다만 안회처럼 가난을 지키다 죽을 이 몸만 남았구나.(只有死顔瓢·지유사안표)

위 시는 노수신(盧守愼·1515~1590)의 ‘할아버지의 담제 날, 4월’(祖考禫日 四月·선고담일 사월)로, 그의 문집인 ‘소재집(蘇齋集)’ 권2에 들어 있다. 조부의 상례를 마무리하는 담제(禫祭) 날에 지은 작품이다. 노수신은 당시 진도 유배 중이었다. 담제는 대상(大祥)을 지낸 뒤 상복을 완전히 벗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내는 상례의 마지막 제사로, 전통적으로 초상 뒤 27개월 무렵의 제사이다.

7구의 ‘香扇’(향선)은 후한(後漢)의 효자 황향(黃香)이 여름이면 아버지의 베개와 자리에 부채질해 시원하게 해 드렸다는 ‘黃香扇枕’(황향선침) 고사를 끌어왔다. ‘삼강행실도’에도 황향이 아홉 살에 어머니를 잃은 뒤 아버지를 홀로 봉양하면서 여름에는 잠자리에 부채질하고 겨울에는 몸으로 이불을 덥혔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8구의 ‘顔瓢’(안표)는 안회(顔回)의 ‘一簞食 一瓢飮’, 즉 한 그릇 밥과 한 표주박 물로 가난하게 살면서도 도를 즐겼다는 ‘논어’의 고사를 가리킨다. 따라서 귀양살이 중인 노수신이 안회처럼 빈궁한 처지에서 삶과 죽음을 감수한다는 뜻이다. 조선 선비들에게 할아버지 기일의 제사와 그날의 추모는 생활의 일부였다.

어제 필자의 할아버지 기일이어서 제사를 모셨다. 할아버지는 장손자인 필자를 유난히 귀여워해 주셨다. 필자도 할아버지 제사를 모시며 ‘조부님 기일에 제사를 올리며’(祖考忌日奠祭有感·조고기일전제유감) 시제로 칠언절구 한 수를 지었다. 한시를 많이 지으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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