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산빛은 저녁에 더욱 아름답고(雨後山光夕更佳·우후산광석갱가) / 흩어진 구름 걷히니 흐린 기운도 개었네.(亂雲披豁霽陰䨪·난운피활제음매)/ 샘물 소리 졸졸, 골짜기에는 바람 일고(泉聲淅瀝風生壑·천성석력풍생학) / 대 그림자 너울대며 달빛은 섬돌에 가득하네.(竹影婆娑月滿階·죽영파사월만계) / 글 읽고 칼을 찼건만 끝내 무슨 일을 이루었던가(書劍竟成何事業·서검경성하사업) / 천지 사이 이 몸만 덧없이 늙어 가는구나.(乾坤虛老此形骸·건곤허로차형해) / 내일 아침 홀로 선영 가는 길로 향하리니(明朝獨向隹陵道·명조독향추릉도) / 멀리 송추 바라보며 남다른 회포에 잠기리라.(遙望松楸別有懷·요망송추별유회)
위 시는 조선 중기 문신 죽음(竹陰) 조희일(趙希逸·1575~1638)의 ‘밤에 읊다(夜詠·야영)’로, 그의 문집인 ‘죽음집(竹陰集)’ 권 6에 실려 있다. 제목 아래에 추석을 맞아 성묘하려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는 문과 급제 후 예조·형조참판, 승문원제조, 경상감사 등을 역임했다.
비 갠 가을밤 산빛과 달빛을 바라보던 시인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다 이튿날 찾아갈 선영을 생각한다. 마지막의 ‘송추(松楸)’는 선영이나 조상의 묘소를 뜻한다. 추석을 앞두고 성묘하며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이 잘 드러난다.
이제 열흘 정도만 있으면 추석 한가위다. 후손들은 추석 전에 조상의 묘를 찾아 풀을 베고 묘역을 정돈한다. ‘소묘(掃墓)’가 오늘날의 벌초와 완전히 같은 말은 아니지만 묘소를 돌보고 성묘한다는 뜻에서는 서로 맞닿아 있다. 벌초는 무성한 풀만 베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뿌리를 돌아보고 조상님들을 생각하며 오늘의 삶을 다시 살피는 일이기도 하다.
필자는 어제(13일) 고향인 대구 달성 논공읍 노이동 갈실마을의 선영에서 아침 8시부터 일가들과 벌초하였다. 인근 산의 여러 묘소에도 후손들이 벌초한다고 예초기 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 벌초를 마친 후 논공농협 옆 돼지국밥집에서 함께 점심을 먹곤 헤어졌다. 목압서사가 있는 지리산까지 천천히 오면 세 시간이 걸린다.
그렇지만 이렇게 고향에 가 벌초하고 일가들 얼굴 보면서 함께 이야기 나누며 밥을 한 그릇 먹고 나면 마음이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