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와 산에 자욱한 안개비가 매화의 혼을 불러오고(溪山烟雨喚梅魂·계산연우환매혼) / 그윽하고 곧은 기운 속에 옛 서원의 문은 닫혀 있네.(正掩幽貞古院門·정엄유정고원문) / 선생께서 매화를 읊고 완상하시던 날을 기억하니(記得先生吟賞日·기득선생음상일) / 황혼의 달빛 아래 뜰 가득 향기와 매화 그림자였으리.(滿庭香影月黃昏·만정향영월황혼)
위 시는 창설재(蒼雪齋) 권두경(權斗經·1654~1725)의 ‘암서헌 앞 작은 매화를 보고 느끼다’(巖栖軒前小梅有感) 두 수 중 제1수로, ‘창설집(蒼雪集)’ 권 6 ‘기후고(耆後稿)’에 실려 있다. 위 시는 도산서당 암서헌 앞의 작은 매화를 바라보며 퇴계를 추모한 작품이다.
어떤 책 등에 보면 ‘상간일소천응허(相看一笑天應許) / 유대불래춘욕거(有待不來春欲去)’라는 시구가 보인다. 퇴계 이황이 단양 군수 때 정을 나눴다는 기생 두향에게 보낸 연시처럼 소개하고 있다. 뜻은 대체로 서로를 보고 한 번 웃는 만남이 하늘의 허락이었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봄이 다가가듯 이별의 서운함을 비유한다는 것이다.
이를 정확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相看一笑天應許’는 ‘정본 퇴계전서’에 1566년(명종 21) 3월 하순 무렵 예안에서 지은 시 ‘代梅花答(매화에 답하며)’의 제3구로 나와 있다. ‘有待不來春欲去’는 이렇다. 1565년 3월경에 지은 ‘寫感五絶’(감회를 쓰다, 오절) 제1수 제3구에 ‘有約不來春欲去(유약불래춘욕거)’로 나와 있다.
따라서 ‘相看一笑天應許 / 有待不來春欲去’를 연속된 두 구절로 묶어 하나의 퇴계 시라고 소개하는 것은 명확하지 않다. 즉 ‘퇴계선생문집’과 ‘정본 퇴계전서’를 기준으로 보면 서로 다른 시에서 가져온 구절을 합친 것이다.
지난달 25일 박용구(84) 경북대 임학과 명예교수가 이끄는 ‘숲과 문화’ 답사팀 8명이 목압서사에 와 필자의 안내로 단천마을 계곡의 소위 ‘문자바위’를 구경한 후 칠불사에 갔다. 칠불사 대웅전 뒤에 피어있는 상사화(相思花)를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퇴계 이황과 두향과의 이야기도 나왔다. 필자가 요즘 권두경의 문집을 보고 있던 참이어서 그의 시를 소개하면서 글을 풀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