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漠漠匏花含雨白·막막포화함우백
정신은 맑고 밝아 늘 깨어 있는 듯하고(神精爽朗每如醒·신정상랑매여성)/ 손님 부르기 좋아해 온 집안에 가득하네.(好遬佳賓滿一廳·호속가빈만일청)/ 바둑과 장기가 긴 날 소일하기 좋아(彈棊不害消長日·탄기불해소장일)/ 좀처럼 집 밖으로 나설 일도 없네.(跬步何曾出戶庭·규보하증출호정)/ 희뿌연 박꽃은 비를 머금어 새하얗고(漠漠匏花含雨白·막막포화함우백)/ 무성한 녹나무는 푸른 하늘에 닿을 듯하네.(依依柟樹接天靑·의의남수접천청)/ 부지런히 벼슬한 지도 어느덧 삼 년이 넘었지만(辛勤積仕餘三載·신근적사여삼재)/ 임금께서 당부하신 말씀 한 번도 저버리지 않았네.(無負臨門詔戒聽·무부임문조계청)
위 시는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1842~1910)의 ‘유세산 지호에게 답하다. 을해년(1875, 고종 12)’(酬柳洗山 止鎬 乙亥·수유세산지호을해)로, 그의 문집인 ‘향산집(響山集)’ 별집 권 1에 들어 있다.
시는 전반부의 한적한 일상과 후반부의 관직 생활에 대한 자부심이 자연스럽게 결합돼 있다. 맑고 소탈한 일상생활과 성실한 벼슬살이를 함께 노래한 시로 드물게 박꽃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제목의 ‘유세산(柳洗山)’은 유지호(柳止鎬·1825~1904)로, 호가 세산이다. 조선 말기 의병으로 활약한 선비로, 부친은 유치명(柳致明)이다. 신창·간성·연천·장기 등의 현감을 지냈다.
위 시를 읊은 이만도는 1866년(고종3)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며 바로 병조 좌랑·정언 등에 제수됐으나 1867년 생부의 상을 당하였고 1870년에는 생모 송씨 부인의 상을 당하였다. 위 시를 지을 무렵인 1872년 송씨 부인의 상을 마치고 다시 벼슬을 시작한 지 3년 정도 된 시기였으므로 7구에서 그렇게 표현하였다.
박은 삼국 시대 이전부터 우리나라에 널리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속껍질은 반찬으로 쓰고, 과육은 나물로 무쳐 먹으며, 겉껍질은 바가지로 쓴다. 꽃은 한여름에서 초가을 사이에 흰색으로 핀다. 어릴 적 어머니가 박나물을 자주 해주시어 많이 먹었고, 제사 모실 때 탕국에 박을 썰어 넣어 끓였다. 요즘 필자는 하동시장 시락국밥집인 밤골집에서 반찬으로 내는 박나물을 종종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