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났건만 비는 물동이를 뒤엎은 듯 쏟아지고, 더위는 사람을 뜨거운 시루 속에 집어넣은 듯합니다. 아직 서늘한 바람 한 점 불지 않으니, 평생 처음 겪는 날씨입니다. 사람은 해마다 추위와 더위를 한 차례씩 겪으며 나이를 먹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여름이 올해처럼 혹독했다면, 지금의 칠십 노인들도 아마 서른다섯 살을 넘기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立秋後, 雨如翻盆, 熱如投甑. 尙未見淸凉點風, 平生剏見也. 人老於一寒一暑久矣. 若每歲之暑, 皆如今夏, 則見今七十老人, 皆不得度三十五歲.(입추후, 우여번분, 열여투증. 상미견청량점풍, 평생창견야. 인로어일한일서구의. 약매세지서, 개여금하, 즉견금칠십노인, 개부득도삼십오세.)
위 문장은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1807~1877)의 ‘신유안에게 보내는 편지’(與申幼安·여신유안)로, 그의 문집인 ‘환재집(瓛齋集)’ 권 9에 들어 있는 서독(書牘)이다. 1874년(고종11)에 보낸 편지이다. 당시 박규수는 우의정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위 문장은 폭우와 혹서가 동시에 이어지는 이상기후를 묘사하면서, ‘평생 이런 더위는 처음이다’는 놀라움과 고통을 드러낸 글이다.
북학파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는 조선 고종 때 문신으로, 애로호 사건·제너럴셔먼호 사건 등과 관련된 활동으로 알려져 있다. 1866년(고종 3) 평안도 관찰사로 있을 때 대동강에 들어와 소란을 피우던 미국 상선 셔먼호를 불살랐다.
후에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가 되어 일본과 친교를 주장하여 강화도 조약을 맺게 하였다. 개화운동의 선구자들인 김옥균 박영효 등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됐다.
1874년 당시에도 지금처럼 무척 더웠던 모양이다. 모레 7일이 입추(立秋)이다. 얼마나 더웠던지 필자와 같은 지리산 화개골에 사시는 김필곤(78) 시인께서 ‘이열치열의 詩’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으셨다. “푸른 풀도 타들어 가는/ 삼십 구도의 焦熱(초열) 속에// 39도의 불소주 한 잔을/ 맞수 떠서 꺾어 본다// 화로엔 백이십 도로/ 작설차도 끓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뜨거워도/ 지옥보다 더 뜨거우랴// 생각을 바꾸고 바꿔/ 빙하기 시대를 생각한다// 어느새 눈보라 치고/ 얼어붙는 그 세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