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잠화는 흰 옥비녀처럼 맑고(簪花如白玉·잠화여백옥)/ 사람을 비추어 환한 빛을 더하네.(照人生輝光·조인생휘광)/ 이 꽃을 그리운 이에게 주고 싶어(我欲贈美人·아욕증미인)/ 아득히 먼 서쪽 하늘을 바라보노라.(迢迢望西方·초초망서방)
위 시는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正祖·1752~1800, 재위 1776~1800) 임금이 읊은 ‘옥잠화’(玉簪花)로 ‘홍재전서(弘齋全書)’ 권 1 ‘춘저록(春邸錄)’ 1에 들어 있다.
홍재전서는 정조의 어제(御製·임금이 몸소 지은 글)를 모아 엮은 문집이다. 춘저록은 정조의 동궁 시절 작품과 정조와 신하 간의 문답·강의·정사 기록 등을 수록한 부분이다.
첫 구의 ‘簪花(잠화)’는 옥잠화(玉簪花)를 가리킨다. 희고 길쭉한 꽃봉오리가 옥으로 만든 비녀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둘째 구는 옥잠화의 깨끗하고 환한 빛깔이 사람에게까지 비쳐, 그 사람 모습도 아름답게 빛난다는 뜻이다. 셋째 구 ‘미인(美人)’은 아름다운 여인을 뜻하기도 하지만, 마음에 그리는 귀한 사람이나 훌륭한 인물을 상징하기도 한다. 넷째 구의 ‘迢迢(초초)’는 길이나 거리가 매우 멀고 아득한 모습을 나타낸다. 꽃을 전하고 싶으나 그 사람이 멀리 서쪽에 있어, 그리운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라는 뜻이다.
이 시는 옥잠화의 희고 맑은 아름다움에서 출발하여, 멀리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앞의 두 구에서는 꽃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뒤의 두 구에서는 그 꽃을 전해 주고 싶은 내면의 정을 드러낸다. 특히 마지막의 ‘迢迢望西方’은 꽃을 건네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직접 말하지 않고, 그저 먼 서쪽을 바라보는 모습만 보여준다. 이처럼 절제된 표현 속에 그리움과 외로움이 잔잔하게 남아 있다.
옥잠화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긴 잎자루가 있으며 가장자리가 물결 모양을 이룬다. 꽃은 떨기 가운데에서 30㎝ 정도로 뻗은 꽃줄기 끝에 흰색으로 핀다.
요즘 목압서사가 있는 지리산 화개골에 옥잠화가 피고 있다. 산책하다가 오솔길에서 가끔 본다. 꽃이 아름다우면서도 모양이 예뻐 걸음을 멈추고 한참 쳐다보다 길을 간다. 이런 게 지리산에 사는 사람이 누리는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