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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587> 비 갠 뒤 달 아래의 풍광 읊은 면우 곽종석의 시

이 좋은 밤에는 미워할 사람조차 없어지고(良宵無惡漢·양소무악한)

  •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
  •  |   입력 : 2026-07-21 18:43:02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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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에는 농사를 살리는 단비가 흠뻑 내렸고(野集神農雨·야집신농우)/ 하늘은 아득히 트여 박탁풍이 불어오네.(天長䞟趠風·천장박탁풍)/ 못과 누대에는 안개가 쓸려 푸르게 맑아지고(池臺烟掃碧·지대연소벽)/ 주렴과 장막에는 달빛이 허공 가득 스며드네.(簾幙月涵空·염막월함공)/ 서늘한 바람의 말소리는 대숲에서 절로 울리고(凉語自鳴竹·양어자명죽)/ 맑은 달빛에 빛나는 오동은 값을 매길 수 없구나.(晴輝不價桐·청휘불가동)/ 이 좋은 밤에는 미워할 사람조차 없어지고(良宵無惡漢·양소무악한)/ 마음속 생각도 활짝 트여 사사로움이 사라지네.(心事豁然公·심사활연공)

위 시는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1846~1919)의 ‘비 갠 뒤 달 아래에서’(霽後月下·제후월하)로, 그의 문집인 ‘면우집(俛宇集)’ 권 2에 실린 오언율시이다. 그의 문집 본집만 63책 165권이고, 속집까지 합치면 183권이나 될 만큼 방대하다.

들녘에는 농사를 이롭게 하는 단비가 흠뻑 내렸고, 비가 갠 하늘은 멀리 트여 시원한 계절풍이 불어온다. 못과 누대에 끼었던 안개가 말끔히 걷혀 푸른빛이 선명하고, 주렴과 장막 사이로 달빛이 허공 가득 스며든다. 서늘한 바람이 대숲을 스치며 맑은 소리를 내고, 달빛을 받은 오동나무의 모습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이처럼 좋은 밤을 마주하니 미워할 사람조차 없어지고, 마음은 활짝 열려 사사로운 감정에서 벗어나 공평하고 맑아진다.

1행의 ‘神農雨(신농우)’는 농사의 신인 신농씨가 내려준 단비를 가리킨다. 2행의 ‘䞟趠風(박탁풍)’은 문맥상 장마 무렵이나 계절이 바뀔 때 세차게 부는 계절풍을 뜻한다.

역사나 고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곽종석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본관이 현풍(玄風·지금의 대구 달성군 현풍읍)으로, 경남 산청 단성 출신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오적 처단을 상소하였고,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전달한 죄로 옥고를 치른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당대 경상우도 선비들 가운데 곽종석의 제자가 많다. 위 시에 나오는 풍광과는 같지 않지만 어젯밤 필자도 ‘霽後月下(제후월하)’ 상황에서 밤늦게까지 글을 읽으며 차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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