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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456> 조선시대 17세기 문인 윤선거가 봄날을 읊은 시

시름은 먼먼 바다인 양 깊어가는데(春愁漠漠心如海·춘수막막심여해)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5-03-30 18:30:03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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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 흰 눈처럼 땅에 가득 향기로운데(滿地梨花白雪香·만지이화백설향)/ 봄바람은 얄궂게도 이미 진 꽃마저 흩날리네.(東方無賴捐幽芳·동방무뢰연유방)/ 시름은 먼먼 바다인양 깊어가는데(春愁漠漠心如海·춘수막막심여해)/ 쌍쌍이 나는 제비는 들보 위에 새집 짓네.(棲燕雙飛綾畵樑·서연쌍비릉화량)

위 시는 윤선거(尹宣擧·1610~1669)의 ‘봄노래’(春詞·춘사)로, 그의 문집인 ‘노서유고(魯西遺稿)’에 수록돼 있다. 그의 호는 미촌(美村)·노서(魯西) 등이다.

그는 송시열과 오랜 친구이자 사돈이었으며, 소론의 영수인 윤증(尹拯)의 아버지이다. 신독재 김집의 제자인 그는 인조 때 생원시에 합격해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로 가 성문을 지키다 점령당했다. 그러자 그는 성을 탈출해 살았다. 그런 까닭인지 평생 출사하지 않고 학문에만 몰두하여 성리학의 대가로 이름을 떨쳤다.

시를 보자. 첫 구에서는 땅에 떨어진 하얀 배꽃이 마치 흰 눈이 내린 것 같다고 한다. 둘째 구에서는 봄바람이 배꽃잎을 떨구기도 하지만 땅에 떨어져 있는 꽃잎마저 흩날리고 있음을 묘사한다. 그런데 셋째 구에서 시인의 감성이 이입된다. 한시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대개 첫 구와 둘째 구에서 풍광이나 자연 모습을 그려내다가 셋째 구에서 시인의 생각이 녹아든다. 그리하여 셋째 구를 ‘전구(轉句)’라고 한다.

온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고 30명의 희생자를 낸 산불이 거의 진화된 모양이다. 이와 관련해 봄에 열리는 많은 축제가 취소되었다. 목압서사가 있는 화개 벚꽃축제도 마찬가지로 취소됐다. 그러다 보니 화개에는 지금 벚꽃이 만발해 있지만 꽃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예년보다 월등히 줄었다.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날씨가 포근하지 않고 좀 쌀쌀하지만 지금 온통 꽃세상이다. 꽃이란 꽃은 다 피어 있다.

산청 산불이 하동으로 넘어왔으나 목압서사가 있는 곳까진 오지 않았다. 화사한 꽃노래를 해야 하는 시기이지만 때가 그렇지 않은지라 윤선거의 표현처럼 시름만 깊어진다. 산불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빈다. 부상 당한 분들의 완쾌를 바라며, 집을 잃고 피신처에서 생활하는 분들도 하루빨리 집이 복구돼 귀가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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