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430> 첫눈이 내리자 조선 중기 문인 유집이 읊은 시

백발이 머리에 새로 자라누나

  •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4-12-17 18:42:15
  •  |   본지 1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白髮有新莖·백발유신경

아이들이 첫눈 온다 알려(兒童報初雪·아동보초설)/ 늙은이를 놀라게 하누나.(却使老夫驚·각사노부경)/ 한 해가 저물고 있는 걸 아니(歲律知將暮·세율지장모)/ 여생은 얼마나 남았을까?(餘生問幾齡·여생문기령)/ 청춘 때 옛 벗 없어졌는데(靑春無舊伴·청춘무구반)/ 백발이 머리에 새로 자라누나.(白髮有新莖·백발유신경)/ 홀연 앞날의 일 생각하니(忽憶前頭事·홀억전두사)/ 이제는 죽음도 편안하리라.(從今歿亦寧·종금몰역령)

위 시는 조선 중기 문인이자 의병인 유집(柳楫·1585~1651)의 ‘첫눈’(初雪·초설)으로, 그의 문집인 ‘백석유고(白石遺稿)’에 있다. 유집이 노년에 첫눈을 맞아 심경을 읊은 내용이다. 시인은 아이들을 통해 첫눈이 왔음을 알았다. 첫눈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 겨울에 눈이 내린다는 건 한 해가 마무리됨을 알리는 징표이다. 노년 시인에게는 남은 생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잘 지내던 벗도 대부분 돌아가고 남은 사람이 이제 없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죽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은가. 때가 되면 누구든 당연히 돌아가는 게 삼라만상 법칙이다. 그러니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다. 언제든 편안하게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에 이른다. 오언율시에 이런 내용을 함축했다. 엊그제 아침 일어나니 첫눈이 내려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마당엔 그렇게 많이 쌓인 건 아니지만 지붕과 차량 위에는 제법 수북했다. 앞의 산도 하얀 옷을 입었다.

지리산 산촌에서 60대 중반을 넘어서는 필자는 청년에 속한다. 어르신들이 집에서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옮겨야 할 때 필자를 부르시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아흔은 넘어서야 어른 대접을 받는다. 위 시를 지은 유집은 67세로 세상을 버렸다. 당시 그 나이면 노인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해가 바뀐다는 것은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또 다른 현실이었으리라. 그리하여 아이들은 첫눈이 내리니 좋다고 뛰어다니며 고함 지르곤 하지만 시인은 되레 놀랐다.

필자는 아직 젊어서인지(?) 첫눈을 보니 설레고 기분이 좋아 차 위의 눈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그러면서 ‘이왕 내릴 바에는 눈사람이라도 만들 정도로 내리지’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가을야구 못간 롯데 자이언츠, 정규시즌 3위 승부처돼 난감
  2. 2니가 치면 나도 친다…프로야구 막판에 안타왕 쟁탈전
  3. 3조경태, 9일 봉하마을서 盧 참배…與 사하을 기초의원들 “복당 반대”
  4. 4성장이냐 쇠퇴냐…부산이란 도시 운명은 이것에 달렸다
  5. 5양산선 개통 코앞인데…인력 충원 없다
  6. 6부산 복덩이 ‘부캉이’ 대선소주 모델됐다(종합)
  7. 7전재수 “2028년 G20 정상회의 유치 도전”(종합)
  8. 8부산이 대륙 끝? 지도 돌려보면 북극항로 시작점
  9. 9AG 4개의 金 호령한 바다의 왕자…“다음은 올림픽 포디움”
  10. 10김희정 의원 ‘대주주 회생동의 촉구’ 국제신문 농성장 찾아 응원
  1. 1조경태, 9일 봉하마을서 盧 참배…與 사하을 기초의원들 “복당 반대”
  2. 2김희정 의원 ‘대주주 회생동의 촉구’ 국제신문 농성장 찾아 응원
  3. 3부산 기관장 후보 김태호·김명수, 시의회 인사청문서 부적격 판정(종합)
  4. 4李대통령 “능력 안되면서 큰자리 요구하다 안 되니 내부 공격”
  5. 5‘정청래 비자 보류’에 민주당은 유감…국힘 “한미동맹 균열”
  6. 6“여야 협치로 市 조직개편·추경 성과…다음은 민생·PK 초광역”
  7. 7이 대통령 지지율 직전과 같은 37%…민주당 35%, 국민의힘 26%
  8. 8李대통령 “우리 말과 글의 힘이 곧 대한민국의 경쟁력”
  9. 9박형준, 퇴임 후 첫 공개 행보… 총선엔 “아직 생각 없다”
  10. 10인천 해수욕장서 北유실지뢰 54일만에 또 발견.. "안전 유의"
  1. 1부산 복덩이 ‘부캉이’ 대선소주 모델됐다(종합)
  2. 2전재수 “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조속 통과…소급적용도 추진”
  3. 3산은 회장 “통합 LCC 본사 부산행 결정 땐 적극 지원”
  4. 4부산 찾은 외국인 올 1~8월 343만 명 돌파…프랑스 관광객 작년보다 111%↑
  5. 5[뉴스 분석] 수도권, 가덕신공항 또 트집…국책사업 발목 자성 촉구 목소리(종합)
  6. 6태웅, 1년 갈등 ‘봉합’…노사정 상생협약 체결
  7. 7‘극지해양 독후감’ 공모전 대상 고등부 김세형, 대학·일반부 하웅 씨
  8. 8부산항 오는 배 위치 실시간 확인
  9. 9지자체 ‘비상금’ 3년새 반토막…국고사업 매칭비는 23% 늘어(종합)
  10. 10[증시와이드] 실적 유지·턴어라운드 종목 선별 접근을
  1. 1양산선 개통 코앞인데…인력 충원 없다
  2. 2전재수 “2028년 G20 정상회의 유치 도전”(종합)
  3. 3동백전 캐시백 상향해 상권 온기…부산형 청년사다리 박차
  4. 4골목길 외국어로만 채운 간판 15개…위법입니다
  5. 5김영광, 보복 운전 사과 “운전 습관 돌아보겠다”
  6. 6김척수 구청장 후보자 수사 7개월째 표류
  7. 7특혜 논란에도…엘시티 투자이민제 13년 실적 고작 2건
  8. 8“크루즈 관광객 동선, 부산항서 이바구길까지 넓힐 것”
  9. 9부산 동백중 교사와 학생 “우리는 와플처럼 달콤한 사이”
  10. 10박완수, 우주항공·SMR 기반 메가 특구 공들여
  1. 1가을야구 못간 롯데 자이언츠, 정규시즌 3위 승부처돼 난감
  2. 2니가 치면 나도 친다…프로야구 막판에 안타왕 쟁탈전
  3. 3AG 4개의 金 호령한 바다의 왕자…“다음은 올림픽 포디움”
  4. 4김영광, 보복 운전 사과 “운전 습관 돌아보겠다”
  5. 5막 오른 ‘HJ중공업·동부건설 챔피언십’…최예본·한아름 공동 선두
  6. 6“핸드볼 8년 만의 아시안게임 金…맏언니로서 기뻐”
  7. 7SON A매치 최다골 대기록에도…뒤숭숭한 韓축구
  8. 8하현승, 계약금 16억에 키움 입단
  9. 9김도영 굳히기냐, 힐리어드·오스틴 뒤집기냐
  10. 10롯데, KIA에 4-12 패…8회 7실점 ‘와르르’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