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가면서 길가 곡식 뜯어 우물우물 씹는데(牛行欲齕路傍黍·우행욕흘로방서)/화내고 채찍 치니 오히려 머뭇머뭇 그리고 가네.(一怒一鞭猶吃去·일로일편유흘거)/해질 무렵 들어오니 부엌에선 아주머니가 야단을 치니(暮歸阿母廚中嗔·모귀아모주중진)/종일 저쪽 숲에서는 야단소리만 들려오네.(終日西林惡謳語·종일서림오구어)
위 시는 조선 후기 시인인 우곡(愚谷) 강백(姜栢·1690~1777)의 ‘산길을 가며(山行)’로, 그의 문집인 ‘우곡집(愚谷集)’에 들어 있다.
시인이 산길을 걷다 농부가 소를 몰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소는 길가의 곡식을 뜯어먹으며 갔다. 농부가 “이 놈, 그러면 안 돼”하며 채찍을 쳐도 듣지 않는다. 해가 질 무렵 일 마치고 집으로 가니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던 아주머니가 뭔가 못마땅한지 소에게 야단친다. 열심히 일하고도 소는 종일 지청구만 듣는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아 요즘 나락이 제법 누렇다. 필자도 어릴 적부터 소가 남의 논에 심겨진 곡식을 뜯어 먹으며 가는 모습을 많이 봤다. 고삐가 풀린 소는 마음껏 뜯어 먹는다. 그러면 인근 어른이나 아이 가리지 않고 남의 소라도 야단친다. 주인이 소를 몰고 가다 그럴 경우는 놀라 큰소리치며 고삐를 잡아당긴다. 위 시가 지어진 시기는 18세기이다. 살기가 힘들던 때이다. 안살림을 하던 아내로서는 먹는 게 부족하니 당연히 불만이 많았을 게다. 뼈 빠지게 일해도 항상 먹을거리가 모자라 그럴 수도 있다. 그러니 괜히 짜증이 나는데 풀 데가 소밖에 없다.
그제 부산민학회 주경업(85) 회장께서 별세하시어 부산 청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필자가 문화부 기자 시절부터 함께 답사도 다니고, 필자의 연재 글에 삽화를 그려주기도 하셨다. 미술교사를 지내셨지만, 일찍 그만두고 굿이나 춤마당 등을 찾아다니며 민초의 다양한 삶의 양식을 취재해 글을 쓰거나 그림으로 묘사하셨다. 함께 고택 답사를 하던 중 소가 남의 곡식을 뜯어먹는 걸 보곤 “우리 민족에겐 소가 사람이야”라고 말씀을 하신 게 생각난다.
장례식장에서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은 ‘산복도로 시인’ 강영환(74) 선생도 주 회장님과의 여러 인연을 이야기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