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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305> 새와 꽃은 자신을 알아준다고 읊은 고려 때 시인 김극기

들꽃도 말없이 웃으며 지나는 사람 붙드네

  •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3-09-12 19:02:54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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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野花無言笑留人·야화무언소류인

백년 인생 나이가 쉰에 다가가는데(百歲浮生逼五旬·백세부생핍오순)/ 기구한 세상에 나루(벼슬길)로 통하는 길 거의 없네.(奇區世路少通津·기구세로소통진)/ 삼 년 동안 도성을 떠나 무슨 일을 이루었나?(三年去國成何事·삼년거국성하사)/ 만 리 먼 귀향길에 이 몸뚱아리뿐이구나.(萬里歸家只此身·만리귀가지차신)/ 숲속의 새는 정 품고 나그네 향해 울어대고(林鳥有情啼向客·임조유정제향객)/ 들꽃도 말없이 웃으며 지나는 사람 붙드네.(野花無言笑留人·야화무언소류인)/ 시 귀신은 닿은 곳마다 와 괴롭게 하니(詩魔觸處來相惱·시마촉처래상뇌)/ 곤궁함을 기다리지 않아도 이미 괴롭다네.(不待窮愁已苦辛·부대궁수이고신)

위 시는 고려 때 문사인 김극기(金克己·1150?~1209?)의 ‘고원역에서(高原驛)’로, ‘동문선’ 권13에 있다. 김극기가 20대 무렵인 1170년 정중부의 난이 일어났고, 서른쯤 되어 과거에 급제하였다. 북방 변방에서 3년 동안 낮은 벼슬을 하다 임기를 마치고 귀향하는 중이다. ‘통진(通津)’은 벼슬길로 나아갈 방도가 없다는 뜻이다. 시인에겐 몸뚱아리 하나뿐이다. 하지만 외롭지 않다.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숲속 새와 들판의 꽃이 시인을 맞이한다. 시라는 귀신(詩魔·시마)은 잠시도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는 고려 때 대문호 이규보보다 더 많은 시를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슬하에 자식이 없고, 알아주는 벗조차 없었다고 했다. 아주 곤궁하게 살았다는 그는 굴하지 않고 평생 시를 썼음을 알 수 있다.

필자도 가난하게 생활하며 시를 쓰지만 김극기의 시대만큼 불우한 시대는 아니다.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 묻혀 살지만 벗도 많다. 엊그제, 전 국제신문 동료 기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필자가 지리산에 들어온 것을 알고 한 번씩 불러내 준다. 하동군 진교면 발꾸미마을 발꾸미횟집에서 만나 전어회를 먹었다. 김세주 김상진 강남훈 김인수 기자와 필자 다섯 명이었다. 안부를 묻고, 신문사 근무 당시 이야기를 재미있게 했다. 인근에 있는 소년 가수 정동원의 집인 ‘우주총동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헤어졌다. 김극기가 벗도 없이 불우했던 것은 시대 탓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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