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수 낙엽 지는 소리에(蕭蕭落木聲·소소락목성)/ 성글게 내리는 빗소리로 잘못 알았네.(錯認爲疎雨·착인위소우)/중(아이) 불러 문을 나가 보게 했더니(呼僧(童)出門看·호승(동)출문간)/ 시내 남쪽 나무에 밝은 달 걸렸다네.(月掛溪南樹·월괘계남수)
기행가사인 ‘관동별곡’ 등을 지은 조선 중기 문신 겸 시인인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4)이 지은 오언절구 ‘산사에서 밤에 읊다(산사야음·山寺夜吟)’로, ‘송강집속집(松江集續集)’ 권1에 들어있다. ‘대동시선(大東詩選)’ 권3에는 ‘가을밤에(秋夜·추야)’로 실렸다. 시인이 가을밤 산사에서 지었다. 밤에 누워 있으려니 바람에 후두둑 낙엽 지는 소리가 꼭 빗소리 소리 같다. 옆의 중(아마도 어린 사미승)에게 나가서 비가 얼마나 내리는지 보게 했더니 “비가 내리는 게 아니고 달이 시내 남쪽 가지에 훤히 떠 걸려 있던데요”라고 말한다. 끝구가 명구이다.
유몽인(柳夢寅·1559~1623)이 천정사(泉精寺)에서 밤중에 폭포 소리를 빗소리로 착각해 지은 시가 있다. 그 시에 “한밤중 좌락좌락 비 내리나 싶었는데(中宵錯認千林雨·중소착인천림우)/ 스님 말이 폭포가 돌뿌리 씻는 소리라 하네.(僧道飛泉灑石磯·승도비천쇄석기)”라는 구절이 있다. 유몽인은 ‘어우야담’에서 자기 시가 정철의 위 시와 분위기가 유사하다고 언급했다.
어제 필자의 목압서사에서 멀지 않은 악양면 정서리의 정암(亭巖) 이형규(李亨圭·90) 선생님 댁에서 현판식이 있었다. 이 댁은 원래 아흔아홉 칸 한옥이었다. 당호는 ‘隱閒堂(은한당)’이었다. 선생님은 지리산 자락에서 4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시어 많은 제자를 길러내셨다. 성품이 조용하시고 나서는 분이 아니어서 분위기에 맞게 필자가 은한당으로 명명하였다. ‘선비가 조용히 은거하는 집’이란 뜻이다. 아래채의 차 마시는 공간은 ‘풍엄재(風俺齋)’로 이름하였다. 굳이 풀자면 ‘어리석은 바람이 머무는 곳’이다. 필자가 서당체로 쓴 글자를 각(刻) 하시는 분이 예쁘게 잘 만들어주셨다. 서늘한 초가을 밤 목압사(木鴨寺) 절터인 목압서사의 연빙재(淵氷齋)에서 한시 여러 수를 음미하다가 위 시가 어울릴 듯해 골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