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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99> 황해도 수안에 부임하는 도중 처서를 맞아 시 읊은 다산 정약용

처서인데 마치 백로 날씨와 비슷하네

  • 조해훈 시인·인문고전학자
  •  |   입력 : 2023-08-22 18:33:47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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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處暑剛如白露時·처서강여백로시

타향 기후는 정말 알기 쉽지 않으니(異鄕天氣最難知·이향천기최난지)/ 처서인데 마치 백로 날씨와 비슷하네.(處暑剛如白露時·처서강여백로시)/ 새벽에 고을 문 나서 몇 리를 가다 보니(曉出縣門行數里·효출현문행수리)/ 자주색 꽃 붉은 이삭이 성 밖 방죽에 가득하네.(紫花紅穗滿郊陂·자화홍수만교피)/ 들판의 농가엔 박이 주렁주렁 달려있고(野屋通身是瓠瓜·야옥통신시호과)/ 흡사 마른 감나무 껍질에 덩굴 덮인 것과 같네.(恰如枯枾被藤蘿·흡여고시피등라)/ 할아버지 한 분 할머니 한 분 문 쪽에 앉아 계시는데(一翁一媼當門坐·일옹일온당문좌)/ 많은 슬픔과 기쁨이 이곳을 지났으리라.(多少悲歡此裏過·다소비환차리과)

위 시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시 ‘수안으로 부임하는 도중에 짓다(赴遂安途中作)’로, 그의 문집인 ‘다산집(茶山集)’ 권3에 있다. 수안(遂安)은 황해도 땅이다. 오늘은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處暑)이다. 처서를 두고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고 한다. 여름 가고 가을이 드는 계절 순행을 잘 드러낸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는 자라지 않아 논두렁 풀을 깎거나 묘소를 찾아 벌초한다. 예전에는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말리는 것도 이 무렵에 했다. 모기의 극성도 사라져가고, 귀뚜라미가 나오기 시작한다.

황해도 수안은 북쪽에 있어 아무래도 한양보다 기온이 낮았다. 백로(白露)는 대개 처서 보름 뒤 오는 절기다. 그런데 다산 선생은 북쪽의 처서를 고향의 백로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새벽에 성문 바깥으로 나가니 완연한 가을 느낌이다. 방죽에는 자주색 꽃의 붉은 이삭이 가득 피었다. 시골 농가에는 박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바짝 마른 나무에 덩굴이 가득 얽혀 있다.

농가 쪽을 보니 한 쌍 노부부가 앉아 계신다. 어쩜 저리 다정하게 보일까. 무더위를 이겨낸 풍광과 인생의 역정을 견뎌낸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은 닮아 있다. 다산 선생은 자연과 사람에게서 굳건한 생명력을 발견했다. 어제 여행에서 돌아와 밤에 마을길 산책에 나서니 확연히 날씨가 달랐다. 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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