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의 바위 날뛰듯 부딪치며 산을 포효하니(狂奔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 지척서도 사람 말소리 분간하기 어려워라.(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 늘 세상의 시비 소리 귀에 들릴까 꺼려서(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 부러 흐르는 물로 산(집)을 감싸게 하였도다.(故敎流水盡籠山·고교류수진롱산)
위 시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908?)의 ‘가야산 독서당에 쓰다(題伽耶山讀書堂·제가야산독서당)’로, ‘동문선’ 권19에 수록돼 있다. 가야산 홍류동 계곡 바위에 위 시가 새겨져 있다. 하지만 지금의 바위 글씨는 최치원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글씨가 마모되어 17세기에 우암 송시열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하튼 이 바위는 최치원 시를 지은 바위라 해 ‘최공제시석(崔公題詩石)’이라 불렀다. 고려 중기 이인로(1152~1220)의 ‘파한집(破閑集)’에 ‘최공제시석’이 보인다.
이 시에서 시원한 느낌이 들 것이다. 겹겹 바위 사이를 포효하듯 물이 흐르고, 세상 시끄러운 소리를 묻어버리니 말이다. 15세기 후반 점필재 김종직이 홍류동에 들러 시 ‘홍류동(紅流洞)’을 지었다. “아홉 굽이 폭포마다 성난 우레처럼 물결 부딪히고(九曲飛流激怒雷·구곡비류격노뢰), 무수히 떨어진 꽃잎이 물결 따라 쓸려오는구나.(落紅無數逐波來·낙홍무수축파래)”라고 읊었다. 홍류동은 포효하는 듯한 강한 물소리가 있는 곳이었다.
‘홍류’는 봄이면 철쭉과 진달래가 붉게 타오르고, 가을이면 단풍이 빨갛게 물든다는 의미가 있다.
첫 행의 거센 물소리는 최치원이 세상에 대해 분노하는 소리로도 읽힌다. 그가 분노하는 소리는 홍류동 거대한 물소리에 파묻히고 만다. 이는 동시에 자신의 분노 목소리 역시 묻힌 것을 뜻한다. 마지막 행에서는 홍류동 거센 물결로 자신의 산을 감싸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
어제가 입추였고, 내일이 말복이다. 절기에 맞춰 시원한 느낌이 드는 시를 고른다고 골랐다. 우리나라는 제6호 태풍 카눈의 영향권에 접어든다. 폭염이 누그러들어 다행이지만 태풍 피해는 없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