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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88> 소낙비가 갑옷 군대 싸우는 소리 같다고 시 읊은 18세기 노긍

떠들썩 온통 모두 갑옷 군대 소리구나

  •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3-07-16 19:48:40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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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嗷嘈盡作鐵軍聲·오조진작철군성

바람이 사립문을 쾅 닫자 새끼 제비 놀라는데(風扉自閉燕雛警·풍비자폐연추경)/ 소낙비가 비스듬히 골 어귀에 들이치네.(急雨斜來谷口平·급우사래곡구평)/ 흩어져 푸른 연잎 삼만 자루에 퍼붓자(散入靑荷三萬柄·산입청하삼만병)/ 온통 갑옷 군대 싸우는 소리처럼 시끄럽네.(嗷嘈盡作鐵軍聲·오조진작철군성)

위 시는 18세기 시인 노긍(盧兢·1737~1790)의 ‘소나기(驟雨·취우)’로, 그의 문집인 ‘한원문집(漢源文集)’에 들어있다. 호가 한원(漢源)인 그는 1765년(영조 35) 진사시에 입격했다. 이후 대과시험을 보지 않고 홍봉한(洪鳳漢)의 셋째 아들 홍낙임의 집에서 그의 자제들을 가르쳤다. 1777년(정조 1) 과거시험장에서 글을 팔았다는 죄목으로 평안북도 위원군(渭原郡)에 유배되었다가 5년 뒤 풀려났다.

시가 재미있다. 그러면서 묘사가 뛰어나다. 먹장구름이 몰려오면서 바람도 세차게 분다. 사립문이 쾅 소리를 내며 스스로 닫힌다. 그 소리에 처마 밑 새끼 제비들이 놀라 짹짹거린다. 그러다 소낙비가 비스듬하게 들이치기 시작한다. 어미를 기다리던 새끼 제비들은 겁이 나 잔뜩 움츠러든다. 좀 있다 소나기는 골 어귀 연꽃 밭으로 옮겨간다. 삼만 개 푸른 연잎 위로 비를 내리붓는다. 그러자 갑옷 입은 군사들이 일대 격전을 벌이는 소리가 들린다. 연못이 마치 전쟁터가 된 듯하다. 위 시를 보면 시인의 문학성이 돋보이고, 소낙비에서 낭만성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에서는 소낙비의 낭만성은 찾아볼 수 없고 피해만 속출하고 있다. 그제와 어제 호우로 사망자와 실종자가 수십 명에 달했다. 피해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경북에서 사망자가 특히 많았다. 충북 청주 오송 지하차도에서도 사망자가 10여명이나 발견됐다. 주택이나 시설이 무너지고 유실된 곳도 많다. 농작물 피해도 크다.

정부에서는 장맛비에 피해가 없도록 조심하라고 밤낮으로 재난안전문자를 보내지만 피해는 발생한다. 인명피해는 예기치 않은 사태로 인해 생기기도 한다. 여름철 장맛비가 적당히 오면 위 노긍의 시처럼 낭만적일 수도 있다. 앞으로는 기후변화 등으로 소낙비에 낭만적이라는 상상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시대가 오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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