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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08> 산속 가을비 풍경을 시로 읊은 유희경

밝은 달 벗삼아 함께 돌아왔다(歸來伴明月·귀래반명월)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2-10-04 18:55:52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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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 지나니 가을 하늘 높아지고(白露下秋空·백로하추공)/ 산속에는 계수나무 꽃이 활짝피었네.(山中桂花發·산중계화발)/ 가장 오래된 꽃가지를 꺾어 들고(折得最古枝·절득최고지)/ 밝은 달 벗 삼아 함께 돌아왔네.(歸來伴明月·귀래반명월)

위 오언절구는 유희경(劉希慶·1545~1636)의 시 ‘山中秋雨’(산중추우·산속에 내리는 가을비)로, 그의 문집인 ‘촌은집(村隱集)’에 수록돼 있다. 유희경은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시를 잘 지어 당대 사대부와 교유한 시인이다. 자기 집 뒤 계곡 가에 대를 쌓아 침류대(枕流臺)라 이름 지어 많은 사람과 어울렸는데, 위 시도 그 공간에서 지었을 수 있다.

아무리 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입추가 지나면 한풀 꺾인다. 처서가 되면 비가 한 번 내릴 때마다 땅이 식는다고 하지 않는가. 백로쯤이면 풀벌레 소리가 요란스럽고 이슬이 내려 가을 기운이 완연해진다. 이 무렵이면 강남에는 가을 달빛처럼 계수나무 꽃의 향기가 시원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위 시의 제목은 산속에 내리는 가을비라 해놓고 비 내리는 풍경은 없다. 높아지는 가을하늘과 시인과 벗이 된 밝은 달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는 제목을 시의 일부로 여겨야 한다. 시를 잘 짓기로 소문났던 유희경이 위 시의 구조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제목을 시의 일부로 보고 해설해보겠다. 산에 들어갔다가 예기치 않게 가을비를 만났다. 비가 그치니 높아지는 하늘이 보이고, 계수나무 꽃이 만발해 있다. 꽃가지를 꺾어 손에 들고, 천천히 산에서 내려온다. 어느새 달이 떠올랐던가. 밝은 달이 마치 시인과 벗인 양 시인을 따라온다. 시 내용이 선명하게 이미지화된다.

필자가 은거하는 지리산의 가을 냄새가 점점 짙어간다. 나뭇잎도 누렇게 바뀌고 있다. 산에 올랐다가 가을비를 만났다. 가을 냄새가 더 풍겨온다. 어둑해서야 산에서 내려온다. 달이 밝아 산길이 훤하게 보여 불편함이 없다. 위 시 분위기와 아주 비슷하다. 단지 계수나무 꽃은 없다. 가을을 느끼기 위해 도시에서 많은 사람이 지리산으로 온다. 어제 목포에서 건축 감리 일을 하는 70대 건축가 한 분이 목압서사에 오시어 필자와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숙소로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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