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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93> 친구 엄효중 만나 빗속 접시꽃을 시로 읊은 김안국

해를 향해 기울려는 뜻 간절한데 비 오니 어쩔꼬(意切傾陽奈雨何·의절경양내우하)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2-08-02 19:00:17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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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가지 드리운 울타리 밑에 작은 접시꽃(松枝籬下小葵花·송지리하소규화)/ 해를 향해 기울려는 뜻은 간절한데 비가 오니 어찌해야 하나(意切傾陽奈雨何·의절경양내우하)/ 내 너를 사랑하여 비를 무릅쓰고 왔으니(我自愛君來冒雨·아자애군래모우)/ 햇볕 받으며 잔뜩 핀 모란꽃은 내 알 바 아니라네.(不知姚魏日邊多·부지요위일변다)

위 시는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1478~1543)의 시 ‘雨中訪嚴孝中詠葵’(우중방엄효중영규·빗속에 엄효중을 찾아가 접시꽃을 노래하다)로 그의 문집인 ‘모재집(慕齋集)’에 수록돼 있다. 평기식으로 지은 칠언절구다. 1·2·4행의 끝에 ‘麻(마)’운목인 ‘花’·‘何’·‘多’를 운자로 썼다. ‘모재집’에는 시제가 ‘雨中訪嚴孝中詠葵’이지만, ‘대동기문(大東奇聞)’과 ‘기아(箕雅)’에는 ‘雨中詠葵’(우중영규)로 돼 있다.

시 속 이미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시인이 친구 엄효중 집을 찾았다. 소나무 가지가 늘어진 울타리 아래 접시꽃이 비를 맞고 피어 있다. 요즘 철이다. 해를 향하는 접시꽃의 그 간절한 마음을 잘 아는데 비가 이리도 내리니 어쩔꼬? 볕 좋은 날 피어 화려함을 뽐내는 모란은 시인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비 맞는 접시꽃은 친구 엄효중을 암시한다. 그는 능력이 뛰어나고, 나라 위해 일하고 싶어 하지만 그늘에 가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비까지 내려 친구의 역량이 더 묻혀버리니 어찌할 것인가. 능력보다 술수와 중상모략으로 높은 자리를 뽐내는 모란 같은 인물은 많지만, 시인의 눈에는 차지 않는다. 옛사람들의 시와 시조는 이처럼 시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행간에 숨긴 채 은유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 등 소장파 명신들이 죽임을 당할 때, 김안국은 화를 면하고 파직되었다. 그 뒤 다시 등용되어 예조판서·병조판서·대제학 등을 지냈다.

광주광역시에서 한시를 10여 년째 공부한다는 분이 친구 두 명과 함께 서산대사 옛길을 걸으러 왔다며 목압서사에 들렀다. 한시를 100수 이상 외우신다고 했다. “葵花가 해바라기냐 접시꽃이냐?” 하고 물어오기에 필자도 그 문제에 단정할 수 없어 “시 내용에 따라 저는 구분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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