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92> 일제의 강제 병합 뒤 만주로 망명해 자찬묘지명 쓴 이건승

죽지 않은들 누가 비난하리오?

  •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2-07-31 19:55:37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不死誰其非之·불사수기비지

나는 죽을 책임은 없으니(我無死責·아무사책)/ 죽지 않는다고 누가 비난할 것인가?(不死誰其非之·불사수기비지)/ 죽을 거라 말해놓고 죽지 않는다면(曰死而不死·왈사이불사)/ 이는 누구를 속이는 것인가?(是誰欺·시수기)/ 마침내 늙어 바라지(창) 밑에서 죽을 것이니(卒以老斃牖下·졸이노폐유하)/ 아! 그것이 슬프구나!(吁其悲·우기비)

경재 이건승(李建昇·1858~1924)이 1918년 만주에서 스스로 지은 묘지명(墓誌銘)이다. 그의 저서 ‘해경당수초(海耕堂收草)’에 실린 ‘경재거사자지(耕齋居士自誌)’에 나온다. 그가 스스로 지은 묘지(墓誌)는 행장처럼 일대기를 기록한 내용으로 별도로 있다, 이건승은 왜 자찬묘지명을 썼을까? 삶의 이력을 잠시 보겠다. 그는 양산군수를 지낸 이상학의 세 아들 중 둘째로 강화도에서 태어났다. 형은 암행어사로 유명한 이건창, 아우는 학자 이건면이다. 조부는 병인양요 때 죽어서도 적을 무찌르겠다고 자결한 전 이조판서 이시원이다.

이건승은 1905년 을사늑약이 있자, 정제두의 6세손 정원하(鄭元夏)와 함께 죽으려 했으나 뜻을 못 이뤘다. 그 뒤 나라가 치욕을 당한 건 강토가 작아서가 아니라 백성을 제대로 교육하지 않은 결과라 여겨 후진을 기르려고 강화도에 계명의숙(啓明義塾)을 열었다. 1910년 8월 29일 강제합병이 있자 그해 10월 2일 만주로 망명했다. 만주에는 정원하가 먼저 와 있었다. 이건승은 1924년 만주에서 세상을 버렸는데 스스로 지은 묘지에서 “내가 나라를 떠나 이곳(만주)으로 온 것은 일본 놈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썼다.

옛사람은 생전에 자기 묘표(墓表)와 묘지(墓誌)를 적고, 심지어 자기를 애도하는 만시(輓詩·挽詩)를 지었다. 묘표에 운문이 첨가되면 묘비명, 묘지에 운문이 첨가되면 묘지명이라 했다. 이런 기록을 통칭 자찬묘지명 또는 자찬묘비명이라 한다. 어제 국어 교사 출신 지인이 전화해 “자찬묘지명을 지었는데 그럴듯한지 들어보라”고 했다. 필자가 “내용이 너무 길어 줄여야겠다” 하니, “줄여 다시 전화하겠다”고 했다. 얼마나 거창하게 무덤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묘비명이나 묘지명은 최대한 축약해야 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묘지명에 칠언절구를 쓴 경우가 더러 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대단지 동시다발 입주하자 부산진구 ‘매물 폭탄’ 비명
  2. 2근무복 입고 식당서 소주 한 병…부산교통공사 직원 2명 징계 의결
  3. 3부산록페 3년 만에 찾았는데…휴대폰·음향 먹통에 분통만
  4. 4근교산&그너머 <1300> 울산 무학산 둘레길
  5. 5그립습니다…영화의 숲에 뿌리 내린 ‘강수연 팽나무’
  6. 6최나연 “사랑하지만 미웠던 골프 그만하려 한다”
  7. 7다시 마주한 BIFF…3년 만에 ‘완전 정상화’ 개막
  8. 8[서상균 그림창] 공포열차
  9. 9부울경 5G 가입자는 ‘봉’…28㎓망 96% 수도권 편중
  10. 10통역사 준비하고 환경 정비하고…부산시, 전세계 아미 맞이 ‘분주’
  1. 1부울경 5G 가입자는 ‘봉’…28㎓망 96% 수도권 편중
  2. 2도산사건 처리시간 부산이 서울의 2배…재판 불균형 해소를
  3. 3고교생 만화 ‘윤석열차’ 놓고 정치권 공방 격화
  4. 4“원전 밀집 부울경, 전력 다소비 수도권…전기료 차등 마땅”
  5. 5한미 북 추가 도발 억제용 미사일 발사...낙탄에 주민 '화들짝'
  6. 6최인호 "HUG 권형택 사장 사의, 국토부 압박 탓"
  7. 7국감 첫날 파행 자정 넘겨 마쳐...둘째날 '부자감세' 논란 예고
  8. 8내일 방통위 국감 여야 전투?...TV조선, MBC 논란 공방 예상
  9. 9빛 바랜 한미 대응사격, 낙탄 사고에 야권 "완전한 작전실패"
  10. 10여가부 폐지 복지부 산하로... 우주항공청 신설 향후 추진
  1. 1대단지 동시다발 입주하자 부산진구 ‘매물 폭탄’ 비명
  2. 2조선업 호황에…친환경 해양플랜트 전시회 부산서 열린다
  3. 3‘국토부 정밀감사’ HUG 권형택 사장 사의 표명
  4. 4빗썸앱 ‘원화 간편입금’ 넣은 베타 서비스 출시
  5. 5주가지수- 2022년 10월 5일
  6. 6[뉴스 분석] 서부산 ‘쇼핑몰 삼각편대(롯데·신세계·현대百)’ 시너지…유통상권 팽창 예고
  7. 78년째 이용객 1위… 에어부산 김해공항 활성화 일등공신
  8. 85년 간 부산지역 중고차 관련 위법 행위 412건… 전국 2위
  9. 9잡히지 않는 부산 '생활물가'…무 119%·돼지갈비 14%↑
  10. 10‘멕시코에서 엘살바도르까지’ 부산세계박람회 ‘중미’ 쌍끌이 공략
  1. 1근무복 입고 식당서 소주 한 병…부산교통공사 직원 2명 징계 의결
  2. 2부산록페 3년 만에 찾았는데…휴대폰·음향 먹통에 분통만
  3. 3통역사 준비하고 환경 정비하고…부산시, 전세계 아미 맞이 ‘분주’
  4. 4“부울경 더 강력한 특별연합 형태로 메가시티 결성을”
  5. 5김해, 낙동강권 지자체 상생모델 만든다
  6. 6하동군 국내 최대 ‘성혈’, 학술가치 높아 보존추진
  7. 7양산시 민원·분쟁 시민통합위서 푼다
  8. 8부산시민의날, 부산대첩 승전 재조명
  9. 9오늘의 날씨- 2022년 10월 6일
  10. 10“주민편의시설, 요금현실화·안전한 이용 위해 노력”
  1. 1최나연 “사랑하지만 미웠던 골프 그만하려 한다”
  2. 2철벽방패 김민재, 무적무패 나폴리
  3. 3AL 한 시즌 최다 62호 쾅…저지 ‘클린 홈런왕’ 새 역사
  4. 4거포 가뭄 한국, 홈런 펑펑 미·일 부럽기만 하네
  5. 5권순우, 세계 23위 꺾고 일본오픈 16강
  6. 6필라델피아 막차 합류…MLB 가을야구 12개팀 확정
  7. 7처량한 벤치 신세 호날두, 내년 1월엔 맨유 떠나나
  8. 8김수지 ‘3주 연속 우승’ 도전…상금 1위까지 두 토끼 잡는다
  9. 9이대호 고군분투했지만…가을의 기적은 없었다
  10. 10손흥민, UCL 첫골 쏘고 토트넘 조 1위 이끈다
  • 2022골프대회
  • 맘 편한 부산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