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家家春栗溢囷倉·가가춘율일균창
새해라, 기쁜 새해라(新年喜新年 신년희신년) / 기쁜 일 자주 생겨 기뻐하였으면(喜事喜頻頻 희사희빈빈) / 풍년 들고 과실이 잘 익어서(典穀豊登園果好 전곡풍등원과호) / 태평시절의 한가한 사람 되었으면.(太平時節作閑人 태평시절작한인) //
새해라, 좋은 새해라(新年好新年 신년호신년) / 좋은 일 자랑하면 좋겠네.(好事好堪誇 호사호감과) / 앞마을 노랫가락 뒷마을에 이어지고(南里人歌賡北里 남리인가갱북리) / 앞집 늙은이 뒷집 늙은이와 부유함을 다투기를.(東家翁富鬪西家(동가옹부투서가) //
새해라, 즐거운 새해라(新年樂新年 신년락신년) / 즐거운 일 더욱 넉넉하여 즐겁기를.(樂事樂更愜 낙사락경협) / 집집마다 쌓은 곡식 곳간에 넘쳐나고(家家春栗溢囷倉 가가춘율일균창) / 사람마다 지은 옷 궤짝에 넘쳤으면.(人人製衣盈箱篋 인인제의영상협)
17세기 학자 서계(西溪) 박세당(1629~1703)이 새해를 맞아 모든 백성이 다 함께 잘사는 세상을 희구한 시다. ‘춘첩(春帖)’ 제목으로 그의 문집 ‘서계집’에 실려 있다. 사람마다 새해를 맞는 느낌과 다짐은 다르다. 지난 한 해는 코로나19로 고통과 걱정 속에 살았다. 사람살이가 더 팍팍해졌다. 그건 묵은해의 일이다. 소띠 해인 올해 신축년(辛丑年)은 모두 걱정 없이 잘살게 될 것이다. 소의 성징이 어떻던가? 성실함으로 재물을 늘리는 역할을 하지 않던가!
박세당은 서로 죽이고 귀양 보내는 정치가 싫어 벼슬을 버리고 경기도 양주 석천동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뒤 당쟁 소용돌이 속에 맏아들과 둘째 아들을 잃자 세상에 대한 혐오를 더욱 느꼈다.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 많은 관직이 주어졌지만, 모두 사양하고 죽을 때까지 농사지으며 학문과 제자 양성에 힘썼다. 그는 새해가 되자 만백성이 잘살기를 진정으로 바랐다.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선비·관료·정치인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집안의 어른(?) 역할을 하고 있는 필자는 새해를 맞아 집안 구성원에게 ‘선근경득(善近慶得)’이란 글씨를 써주었다.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좋은 일이 절로 따라온다’는 의미다.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