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旣莫足與爲美政兮·기막족여위미정혜
<1>아! 저 당파 무리 쾌락만 추구하니(惟夫黨人之偸樂兮·유부당인지투락혜)/ 가는 길은 험하고 좁고 어둡구나(路幽昧以險隘·노유매이험애)./ 어찌 내 자신의 재앙을 두려워할까(豈余身之憚殃兮·기여신지탄앙혜)/ 임금의 수레 무너져 넘어질까 두렵네(恐皇與之敗積·공황여지패적).
<2>다 끝났다(已矣哉·이의재)/ 나라에는 나를 알아주는 이 없으니(國無人莫我知兮·국무인막아지혜)/ 나라를 생각해서 무엇하겠는가(又何懷乎故都·우하회호고도)/ 바른 정치 위하여 함께할 이 없으니(旣莫足與爲美政兮·기막족여위미정혜)/ 나는 은나라 때 팽함을 따라 죽겠노라(吾將從彭咸之所居·오장종팽함지소거).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정치가이자 시인이었던 굴원(屈原·B.C.343?~277?)이 지은 시 ‘이소(離騷)’의 부분이다. ‘이소’는 중국 문학에서 가장 오래된 장편 서정시이다. 굴원이 추방당한 뒤 쓴 작품으로, 373행 2490자로 구성돼 있다.
당시 주나라의 강력한 집권 체제가 무너지자 수백 개 제후국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결국 제·초·연·조·한·위·진의 전국칠웅이 남았다.
<1>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초나라 왕족 후손인 굴원은 26세 젊은 나이에 내정(內政)뿐만 아니라 외교를 담당하는 중책인 좌도 벼슬에 임명됐다. 그는 특히 진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회왕에게 간언했지만, 왕은 간신들의 말에 넘어갔고 굴원은 쫓겨났다. 회왕과 불화로 물러나야 했던 굴원이었지만, 자신의 앞날보다 임금 즉 나라를 걱정하고 있다.
<2>는 ‘이소’의 마지막 장이다. 굴원이 아무리 충정 어린 말을 해도 우매한 임금은 듣지 않는다. 굴원에게는 자신을 알아주는 임금도, 벗도 없다. 기울어져 가는 나라의 운명을 보고 있을 수만 없었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사모하던 팽함을 따라 죽는 일이었다. 그 결심 내용이다. 굴원은 결국 정치적 뜻을 펴지 못하고, 멱라강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라를 걱정하지 않는 정치인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사심을 버리고 진정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하는 것이리라.
시인·고전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