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필 관(見-18) 그 기(八-6) 바 소(戶-4) 쌓을 적(禾-11)

아니, 노자가 ‘積(적)’ 곧 ‘쌓음’을 강조했다고? 참으로 그러한가? 무릇 노자 사상의 고갱이는 ‘無爲(무위)’ 아닌가. ‘쌓음’은 ‘爲(위)’와 다를 게 없는데, 이를 강조했다고? 당연히 의문을 가지거나 시비하실 분도 있으리라. 먼저, 노자가 말한 無爲(무위)는 결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무위가 ‘自然(자연)’ 곧 ‘저절로 그러함’이라 해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은 아니다. ‘하지 않음’이 아니라 ‘억지로’ 하지 않음이 무위다.

‘억지로 하지 않음’이 쉬운가? 누구나 경험이 있을 테니, 그 경험을 떠올려보라. ‘억지로 하지 않음’이 쉽던가? 마음만 먹으면 무위가 저절로 이루어지던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한없이 자유롭던가? 따분하고 지겹고 근질근질했으리라. 그것은 무위가 아니라 無聊(무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애쓰지도 않으면 무위가 되는 게 아니다. 유위조차 애쓴 대로 되지 않는데, 어찌 무위가 저절로 되겠는가? 만약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무위할 수 있다고 말했다면, 그는 노자가 아니다. 사기꾼이나 似而非(사이비)지.

노자가 말한 ‘重積德(중적덕)’의 ‘적’은 무위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이요 방편이며 길이다. 무위를 체득하고 체화하는 과정이다. 누구도 이 과정을 생략한 채 무위에 이를 수 없다. 사람마다 그 과정을 빠르게 거치거나 더디게 지나거나 하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뛰어넘고 갈 수는 없다. 그런 비결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어찌 말하지 않았겠는가? 왜 굳이 ‘重積德(중적덕)’을 강조했겠는가? 그냥 ‘積德(적덕)’도 아니고.

‘문자’ ‘道原(도원)’에서 말했다. “欲剛者, 必以柔守之; 欲强者, 必以弱保之. 積柔卽剛, 積弱卽强, 觀其所積, 以知存亡.”(욕강자, 필이유수지; 욕강자, 필이약보지. 적유즉강, 적약즉강, 관기소적, 이지존망) “굳세어지려면 반드시 부드러움으로 자신을 지켜야 하고, 강해지려면 반드시 야리야리함으로 자신을 간직해야 한다. 부드러움을 쌓으면 굳세어지고, 야리야리함을 쌓으면 강해지니, 그 쌓은 바를 살펴보면 살지 죽을지 알 수 있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