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릴 치(水-5) 사람 인(人-0) 아닐 비(非-0) 백성 민(氏-1)

‘죽간본’ 21-1은 이렇게 시작된다. “治人事天, 莫若嗇. 夫唯嗇, 是以早服. 早服, 是謂重積德.”(치인사천, 막약색. 부유색, 시이조복. 조복, 시위중적덕)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 아끼는 것만 한 게 없다. 오로지 아끼므로 일찌감치 따른다. 일찌감치 따르는 것, 이것을 거듭 덕을 쌓는다고 한다.”

여기서 嗇(색)은 아끼다는 뜻이다. 早(조)는 일찍을 뜻한다. 服(복)은 좇다, 따르다, 실행하다, 익다는 뜻이다. 重(중)은 거듭, 거듭하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먼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구절은 ‘治人事天(치인사천)’이다. 그런데 수많은 연구자나 해석자 가운데서 이 구절에 주목한 이는 거의 없다. 주로 ‘嗇(색)’에 초점을 맞추어 풀이를 하는 데 그쳤다. 그러다 보니, ‘치인사천’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다. 게다가 ‘治人(치인)’과 ‘事天(사천)’의 번역을 무리하게 한 경우도 적지 않다. ‘治人(치인)’을 ‘백성을 다스린다’나 ‘인간을 다스린다’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事天(사천)’을 ‘天時(천시)를 이용하다’나 ‘자신을 닦는다’라고 번역하기도 하는 것 따위가 그렇다.

‘治人(치인)’의 ‘人(인)’은 백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노자 당시에는 人(인)이 통치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 귀족이나 관리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통치를 받는 백성을 지칭할 때는 ‘民(민)’이라고 표현했다. 人(인)이 民(민)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두 글자는 명확하게 구분되어 쓰였다. 노자도 구분해서 썼다. 그러니 ‘治人(치인)’을 ‘治民(치민)’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며, 문맥을 제대로 짚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노자는 통치의 원리를 풀어 밝혔다. 이는 노자의 글을 황제나 군주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治人(치인)은 황제나 군주가 백성을 다스린다는 것이 아니라 신하들 또는 관리들을 다스린다는 뜻이 된다. 이 신하나 관리들이 위임을 받아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다. 이것이 왕정의 통치 구조다. 이렇게 해석해야 ‘事天(사천)’의 참된 의미도 드러난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