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명(口-3)아닐 비(非-0)늘 상(巾-8)

‘죽간본’ 10장은 ‘道恒亡名(도항무명)’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 넉자는 그대로 모순이면서 역설이다. 이름이 없다면서 ‘도’라고 부르고 있으니, 모순이다. ‘도’라고 부르고는 있으나 실상이 아닌 ‘이름’에 지나지 않으므로 속지 말라고 하는 것이니, 역설이다.

이를 더 자세하게 표현한 것이 통행본 ‘도덕경’ 1장 첫머리에 나오는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다.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나, 그것은 한결같은 도가 아니다. 이름은 이름이라 할 수 있으나, 그것은 한결같은 이름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죽간본’에는 나오지 않는다.

공자의 언어관을 ‘正名(정명)’이라 한다면, 노자는 ‘無名(무명)’이라 할 수 있다. ‘이름을 바르게 한다’는 정명은 복잡한 관계를 정리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정치와 사회, 경제가 효율적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문명화 과정이다. 따라서 공자도 도를 말하지만, 그것은 문명적 질서로서 도를 가리킨다.

반면에 노자는 자연이자 혼돈으로서 도를 말하므로 이름이 있을 리가 없다.

노자의 도는 언제나, 늘, 한결같이 이름이 없다. 아득한 옛날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다. 인간이 아무리 애써서 이름을 붙여도 그것은 ‘도’ 자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纖纖玉手(섬섬옥수)의 고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킨들, 그 손가락이 달이 될 리 없고 달을 닮지도 않는다.

禪師(선사)들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왜 손가락을 보느냐”고 구박하는데, 참 딱하기도 하다! 달을 가리키니 그렇지. 애초에 달을 가리키지 않았다면, 손가락을 볼 일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어찌하리오! 중생이라 가리키지 않으면 있는 줄을 모르고, 있다고 가리키면 손가락만 보고 있으니.

‘도항무명’에도 그런 뜻이 담겨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 일어나는 모든 일이 벗어나지 못하고 따를 수밖에 없는 길, 이를 임시로 ‘도’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이름을 아는 것으로 마치 도를 아는 듯이 여기고 있으니. 도라는 이름으로는 도를 알 수 없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