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르게 할 평(干-2) 뜻 의(心-9) 맑을 청(水-8) 정신 신(示-5)

흔히 “知彼知己, 百戰百勝”(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 하면서 이 구절이 ‘손자병법’에 나온다고 말하는데, 실제 ‘손자병법’에는 이 구절이 나오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이미 언급했듯이 “知彼知己, 百戰不殆”(지피지기, 백전불태)로 나온다. 백 번을 싸워서 백 번 다 이긴다는 것과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것, 이 둘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백 번을 싸워서 백 번 다 이긴다는 말은 병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기만 하면 어떤 전략이나 전술이 없어도 이긴다는 말인가? 병법은 전략을 세우고 전술을 운용하는 일인데, 어찌 전략과 전술 없이 싸워도 이긴다는 말인가? 적을 알고 나를 안다는 것은 전략과 전술을 세우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은 일종의 처방전이다. 뛰어난 의사가 환자의 증세를 잘 살피고 그 기운의 허실에 따라 처방을 내리듯이 전략과 전술은 적과 나의 상황, 지형과 지세 따위를 전반적으로 고려해서 짠다. 이를 병법에서는 勢(세)라 한다. 이 세는 전면에 드러나 있지 않고 숨어 있어서 쉽사리 파악할 수 없다. 병법에 대해 잘 아는 자라도 싸움에서 이기기 쉽지 않은 이유는 變化無雙(변화무쌍)한 세를 간과하거나 파악하지 못해서다.

그러면 이 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자’ ‘하덕’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凡擧事者, 必先平意淸神. 神淸意平, 物乃可正. 聽失于非譽, 目淫于采色, 而欲得事正卽難矣. 是以貴虛.”(범거사자, 필선평의청신. 신청의평, 물내가정. 청실우비예, 목음우채색, 이욕득사정즉난의. 시이귀허) “무릇 일을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뜻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정신을 맑게 해야 한다. 정신이 맑고 뜻이 가라앉으면 온갖 것들이 바르게 다가온다. 귀가 비난과 칭찬에 쏠리고 눈이 모양새와 색깔에 빠지면 일이 바르게 되기를 바라더라도 어렵다. 이런 까닭에 텅 비움을 귀하게 여긴다.”

아무리 병법을 잘 익히고 정보를 충분히 확보했더라도 텅 빈 마음과 맑은 정신으로 판세를 읽어내지 못하면 이길 길을 얻지 못한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