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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8> 黃老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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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1-11 20:15:07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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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황 (黃-0)노자 노 (老-0)학문 학 (子-13)

黃帝(황제)와 老子(노자)를 묶어 ‘黃老(황로)’라 하며, 이에 바탕을 둔 학문을 ‘黃老學(황로학)’이라 한다.

황제와 노자는 본래 아무런 관련이 없다. 실제로 先秦(선진) 시대의 문헌들 가운데 황로나 황로학을 언급한 경우는 거의 없다. 다시 말해, 한나라 이전까지는 황제와 노자를 나란히 거론한 경우도, 황로라는 용어를 사용한 경우도 없다. 황로라는 말이 문헌에서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사마천의 ‘사기’가 최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기’ 이후로는 ‘漢書(한서)’, ‘後漢書(후한서)’, ‘論衡(논형)’ 등 한나라 때 문헌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용어가 되었다.

또 황제는 전설 속 인물로, 軒轅氏(헌원씨)로 불리기도 한다. 중원 각 부족의 공동 조상이자 漢族(한족)의 선조로 숭배되며, 궁실과 수레, 배, 음악, 문자, 의학 따위를 처음 발명했다고 전한다. 말하자면, 중국 문명을 창시한 이상적인 제왕이다.

그렇다면, 사마천도 말했듯이 無爲(무위)와 淸淨(청정)을 중시한 노자와 황제를 하나로 묶기에는 매우 어색하지 않은가? 바로 여기에 황로학의 주요한 특징이 있다. 서로 이질적인 사상이 하나로 어우러져서 새로이 종합적이고 통섭적인 학문이나 사상으로 나타난 것이 황로학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황로학은 다양한 학파가 서로 다투던 戰國時代(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황로학의 발생과 관련해서는 전국시대 齊(제)나라의 수도 臨淄(임치)에 설치되었던 稷下學宮(직하학궁)을 지목한다. 제나라 宣王(선왕)이 천하의 학자들을 불러 모아 우대하면서 중원 각지에서 다양한 학파의 사람이 이곳에 와서 토론하고 연구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황로학과 같은 종합적인 학문이 등장하게 되었으리라.

사실 ‘管子(관자)’만 하더라도 유가와 법가, 도가, 병법가, 음양가의 학문이 두루 통섭되어 있는데, 이는 제나라의 학자들 또는 직하학궁의 학자들을 통해 완성되었기 때문이리라. 유가의 저술인 ‘순자’에 법가와 도가의 학문이 섞여 있는 것도, 특히 ‘한비자’에 도가의 학문이 주요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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