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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조선 속의 일본 <8> 일본어 통역관들, 그들은 어디에서 살았을까?

왜관 정문 1㎞ 거리에 통역관 근무지 … 한일 외교·무역정보 ‘최일선’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9-04 18:44:55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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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어 통역 임무 맡은 관리
- 임관 있다해서 ‘임소’라 칭해
- ‘훈도’ ‘별차’ 통역관 등 상근

- 조정 분위기나 공작미 상황 등
- 알아볼 일 있으면 왕래·편지
- 양국 간 긴박한 일에도 교신

- 행랑채 마구간 부엌 등 갖춰
- 일본사절 응접 공간도 마련

- 2014년에 부산 중구 영주동에
- ‘임소길’이란 도로명도 생겨
‘동래부사접왜사도’ 속의 성신당과 빈일헌(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임관은 임소(任所)에 살았다

2014년 도로명주소가 생길 때 부산 중구 영주동에 임소길이 생겼다. 임소길이란 도로명을 붙인 이유를 보면 “영주동의 옛 명칭인 임소(任所)를 인용한다”고 소개돼 있다.

임소는 임무를 맡은 사람 즉 임관(任官)의 장소라는 의미이다. 왜관 안팎에서 일본어 통역을 맡아 활약하던 조선의 통역관을 임관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임소를 임역소(任譯所)라고도 한다. ‘증정교린지’에는 임관에 대해 부산 훈도 1명, 별차 1명, 감동관, 별견당상관, 문정관 등이라고 하였다. 감동관은 왜관 수리 등 건축 업무가 있을 때 파견되었고, 별견당상관은 말 그대로 특별히 파견하는 당상관 지위의 역관이었다. 문정관은 일본인 표류민이 발생하여 이를 조사하고 돌려보내기 위해 파견된 역관이었다. 그러므로 임소 상근자는 훈도와 별차라고 불리는 통역관이 전부였다.

그렇다면 훈도는 누구인가? 훈도는 부산에 있던 통역관의 수장으로 왜관 관련 업무를 전담하고 관리하는 직책이었다. 부산 근무 기간은 2년6개월이었다. 그런데 훈도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삼포왜관 시절부터 부산포왜관에 파견되었다. 당시 일본 사절을 응접하는 역할뿐 아니라 부산포에 있던 일본어 통역관 양성 학교의 교수직도 담당하였다.

훈도 다음의 직책은 별차였다. 훈도와 같이 왜관 관련 업무를 맡았고, 기장 울산 등 동해안 쪽에 표착한 일본인 표류민의 조사도 담당하였다. 별차의 부산 근무 기간은 1년이 기본이었다. 일본 관련 업무가 중요하고 공동으로 담당했기 때문에 훈도와 별차를 줄여서 ‘훈별’, 두 역관이란 의미로 ‘양역(兩譯)’, 두 임관이란 의미로 ‘양임(兩任)’이라고 불렀다.
‘초량화집’ 속의 조선 측 역관 건물들. (도쿄 도립 히비야도서관 소장)
■일본인의 임소 방문 잦아

임소는 초량왜관이 있었을 때 어떤 모습이었을까? 임소는 설문과 왜관 수문(정문) 사이에 위치하며, 왜관 수문에서 길을 따라 1㎞ 남짓을 걸어가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왜관에 일이 생기거나, 일본 관련 업무로 의논할 것이 있으면 일본인들은 훈별을 만나러 임소를 자주 찾았다. 그래서 오다 이쿠고로란 일본인 통역관이 쓴 ‘초량화집’에는 왜관에서 임소로 가는 길을 적어두었다. “임소로 넘어가는 고개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옛길이 있다. 해안가에 이르면 오래된 비석이 있다. (왜관을) 이전할 무렵에는 이 고개 주변에서 왜관 개시 물품에 대해 세금을 거두었다고 한다. (초량으로) 왜관을 이전한 후에는 수문(守門)에서 세금을 (거두는 것을) 정했다. 지금은 이 주변을 세청(稅廳)이라고 부른다. 이 길에서 설문을 내려다보고 왼쪽으로 내려가면 임소로 가는 길이 있다”는 내용이다.

왜관과 임소는 거리가 가까워 직접 왕래도 했지만 편지의 주고받음도 잦았다. 두 나라 통역관들이 남긴 문서들을 보면 긴급한 일이 있을 때에는 일본인들이 매일 임소로 가서 훈별을 재촉하는 일이 있었다. 외교 업무와 관련하여 조선 조정의 분위기는 어떤지, 대마도 재정에 아주 중요한 공작미(일본에서 들여오던 공무역 수입품을 결제하기 위해 지급하던 쌀)가 지체될 때는 왜 지체되는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 일본인들은 임소를 찾아갔다. 일본인 통역관들이 새벽부터 편지를 써서 보내면 조선인 통역관들이 바로 답을 하기도 했다. 또 연달아 일본인들이 편지를 보내는 일도 있었다. 두 나라 사이의 일이 긴박하게 돌아갈 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현재 부산박물관 뜰에는 ‘약조제찰비’(1683)가 세워져 있는데, 여기에도 임소가 등장한다. 새겨진 비문 마지막을 보면 일본인들이 용무가 발생하면 통행 찰(札)을 받아서 훈도와 별차가 있는 곳을 왕래할 수 있다고 하였다. 왜관과 임소 사이는 분주한 길이며, 정보의 길이었다.

■도면으로 살펴본 임소

임소에는 훈도의 집무소이자 거주지인 훈도청, 별차의 집무소이자 거주지인 별차청, 출사역관의 집무소이자 거주지인 유원관 통사청 통인방(通引房) 사령방(使令房) 등의 건물이 있었다. 통사청은 훈도와 별차 아래의 통역관인 소통사의 집무소이다. 통인방과 사령방은 동래부-임소-왜관과의 연락 및 역관 업무 보조 등을 담당하는 통인과 사령의 공간이었다.

18세기 말의 왜관을 알 수 있는 ‘초량화집’에는 훈도청 별차청 통사청 유원관(출사청) 유원당(통사청) 사령청의 도면이 수록되어 있고, ‘증정교린지’와 ‘동래부지’에는 각 건물의 규모와 위치, 건립 연도가 기록되어 있다. ‘동래부사접왜사도’에는 성신당과 빈일헌의 전체 경관이 그려져 있다.

건물 위치를 보면 임소 가운데에 훈도청이 있고, 그 남쪽으로 거의 붙어서 별차청이 있었으며, 성신당 동쪽에는 출사청 통사청 사령청이 있었다. 훈도청은 10칸의 성신당, 생활공간인 8칸의 안채(내사· 內舍) 행랑채 마구간 사기고(沙器庫·그릇 창고) 등을 갖추고 있었다. 성신당은 훈도를 상징하는 건물이므로, 훈도청은 곧 성신당으로 불렸다.

도면에서 주목되는 것은 성신당의 바깥 대문에 빈대아문이란 글씨를 써놓은 것이다. ‘대접을 담당하는 관청’이란 의미이다. 훈도는 왜관과의 업무를 실제로 총괄하고 동래부와 조정에 보고하는 중요한 통역관이므로, 대문에 이곳을 상징하는 편액을 붙인 것이다. 대문을 통과해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대청이 있는 성신당이 나타난다. ‘성신(誠信)’이란 당호는 1727년 당시 훈도로 부임했던 현덕윤이 붙였다. 일본 업무를 담당하는 통역관들의 정성스러운 마음과 신뢰를 강조한 말이다. 성신당 외 ‘하향(연꽃 향기)당’ 편액이 있는 방이 있고, 성신당 옆에는 문서를 담당하는 서기(書記) 통사의 공간이 있다. 각 방은 대청마루로 연결되어 있고, 부엌이 있었다. 그리고 식수를 공급하는 우물, 연못과 화단도 있었다.

별차청은 빈일헌으로 불리는데, 훈도청에 비해 규모가 작았지만 안채와 행랑채, 부엌, 마구간 등을 갖추고 있었다. 출사청은 일본사절을 응접하기 위해 서울에서 별도로 파견되는 출사역관의 공간으로 유원관이라는 별칭이 있다. 출사청은 1709년 현덕윤이 출사역관으로 부산에 왔을 때 사재(私財)를 써가며 세운 건물이다.

그리고 소통사의 공간인 통사청은 유원당이라고도 불렸다. 소통사는 부산 사람들로 일본어 교육을 받은 30~40명에 이르는 통역관들이었다. 이들의 업무는 훈별 보좌부터 문서 담당, 일본인 왕래 감시, 일본 선박 감찰, 공작미 지급 관장, 왜관 잡상인 단속, 연회 때 그릇 관리, 각종 왜관 지급물품 관리, 수문과 설문에서 번을 서면서 통역하기 등 왜관의 모든 업무에 관여했다.

■현덕윤과 임소의 인연

임소의 건물은 통역관 현덕윤과 인연이 많다. 현덕윤은 부산에 근무할 때 유능한 통역관이자 외교관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물론 낙후된 역관 건물을 대대적으로 신축·개축한 인물이다. 막대한 재정과 많은 노동력 문제도 해결하면서 동래부의 부담을 줄였다. 그리고 훈도가 사용하는 건물에 ‘성신’이란 이름을 붙였다. 동래부사는 물론 1730년에는 왜관에 근무하러 온 아메노모리 호슈란 일본인은 성신당에 대한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현덕윤과 아메노모리 호슈는 일찍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이들의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남겨져 있다.

임소는 조선인 통역관의 공간이었다. 통역관은 단순히 통역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두 나라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1차적으로 접하면서 일본인과 교섭과 타협을 하는 외교관, 동래부와 조정 그리고 왜관 사이의 정보 전달자, 국가의 무역을 하는 무역상인이 되기도 하였다. 많은 일을 해내는 공간이 임소였고, 우리에게는 2014년 도로명주소로 나타난 것이다.

양흥숙 부산대 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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