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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아이 잃은 부모역, 노랑머리로 부성애 표현”

영화 ‘우상’의 설경구

  • 국제신문
  •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  |  입력 : 2019-03-20 18:48:25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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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뺑소니로 아들 죽자 진실 파헤치는 역할
- “시나리오 읽은 이후 새벽까지 잠 못자
- 핏줄에 맹목적 집착 이해 안돼 선택”
- 내달 개봉 새 영화 ‘생일’도 아버지역
- 현실에서 우상은 같이 열연한 한석규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설경구가 올해 가장 논쟁적인 영화 ‘우상’(개봉 20일)으로 돌아왔다.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 초청작이자 ‘한공주’의 이수진 감독과 충무로를 대표하는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 등이 열연한 ‘우상’은 본인만의 우상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아들이 저지른 자동차 뺑소니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은 구명회(한석규), 뺑소니 사고로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 부남을 잃고 절망에 빠진 아버지 유중식(설경구) 그리고 유중식의 아들이 죽던 날 같이 있다가 홀연히 사라진 여인 최련화(천우희)의 물고 물리는 이야기는 끝까지 몰입감을 주며 ‘우상’과 ‘허상’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특히 유중식 역을 맡은 설경구는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절망에 빠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다 점차 이성을 찾아가며 뺑소니 사고의 진실을 파헤치는 절정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 감독은 설경구에 대해 “현장에 나올 때면 막 링 위에 올라가려고 준비하는 선수 같았다. 바짝 독기를 올린 상태로 온다. 설경구는 진심으로 하는 배우”라고 극찬했는데, 설경구의 연기를 보면 이 말에 공감하게 된다.

최근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살인자의 기억법’ ‘1987’ 등에 출연하며 10대 관객까지 사로잡아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설경구를 만나 논쟁적 영화 ‘우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인터뷰 내용에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우상’의 시나리오를 보고 가슴이 쿵쾅거렸다고 했다. 어떤 면에서 가슴을 울렸는가.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촘촘하며 치밀하고, 세 인물이 보여주는 자신만의 우상에 대한 집착이 보편적인 것을 뛰어넘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맹목적인 집착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상’에서는 살인까지 하면서 극한으로 몰고 간다. 시나리오를 읽고 새벽까지 잠을 못 잘 정도로 복기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인물들이 저지르는 행동이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왜 그런 행동을 했나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라.

-처음부터 유중식 역할로 제의를 받았는가.

   
영화 ‘우상’에서 함께 열연을 펼친 한석규(왼쪽)와 설경구. CGV아트하우스 제공
▶한석규 선배님이 명회 역으로 먼저 캐스팅된 상태였다. 그래서 중식을 집중해서 봤는데, 련화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자신의 아들인 부남의 아이가 아닌 것을 알면서 왜 이렇게 집착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배 속의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련화도 모른다. 그래서 ‘혹시 중식의 아이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유중식은 련화의 아이가 아들 부남의 아이가 아닌데도 마치 자신의 핏줄처럼 생각하며 집착한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부남이가 죽자 자신만 스스로 속이면(믿으면) 련화의 아이가 자신의 핏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라진 련화를 그토록 찾으려 하는 것이다. 부남을 화장하는 장면을 보면 중식은 이미 죽은 아들을 대신해 다시 견고한 성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부남의 시신이 화장터로 들어가자 획 돌아선다.

-영화의 결은 전혀 다르지만 다음 달 개봉하는 ‘생일’에서도 세월호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우상’과 ‘생일’은 영화 색깔이 전혀 다르고, 부성애의 결도 다르다. 중식은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아들 부남이와 고립된 생활을 한다. 둘만의 성이 견고했는데, 부남이가 죽으면서 고립된 성이 깨지는 것이다. 련화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부남이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아이에게 집착하는 것은 다시 성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련화는 중국에서 와서 불법체류하고 있는 사람이라 자신과 혼인신고를 하고 진실을 파헤친다. 중식이는 아들 부남이와 같은 노랑머리를 하고 부성애를 보여주는데, 세월호 사건을 다룬 ‘생일’의 부성애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한석규, 천우희 씨와 처음 호흡을 맞췄다. 현장에서 호흡은 어땠나.

▶한 선배님은 편안한 분이다. ‘우상’은 영화의 성격상 쉽지 않은 현장인데 스태프와 배우들 전체를 편안하게 해줬다. 사실 ‘우상’ 다음에 ‘생일’을 촬영했는데, 후반부에 ‘우상’ 촬영이 예정보다 길어지면서 ‘생일’ 촬영과 맞물렸다. 한 선배님이 그것을 알고 제 장면을 먼저 찍을 수 있게 배려도 해주셨다. 우희는 련화가 괴물 같은 캐릭터임에도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반면 저는 예민한 캐릭터여서 현장에서도 예민한 대로 있었다.

-영화의 후반부에 논란이 될 만한 장면이 있다. 유중식은 점쟁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의 목을 잘라야 한다”는 말을 듣고 광화문 광장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의 목을 자른다. 영화 ‘우상’을 상징하는 장면이자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사전에 이순신 장군 종친회의 허락을 받고 넣은 장면이다. 물론 CG로 만든 장면이고. 편하게 하라며 허락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관객과의 대화에서 재미있는 질문이 있었다. 광화문에는 세종대왕 동상도 있는데, 왜 이순신 장군 동상이었느냐는 것이었다. 중식의 단순함을 표현한 것이기도 한데, 점쟁이가 가장 큰 사람의 목을 자르라고 하지 않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세종대왕 동상은 앉아 있고, 이순신 장군 동상은 서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고 대답했다.

-‘우상’의 세 인물 또한 자신들이 만들어낸 우상을 맹목적으로 쫓는다.

▶‘우상’의 세 인물 모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픈 상태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우상’은 아픈 세상, 병들어 있는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고, ‘우리 모두가 다 아플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상’이라는 영화는 어떻게 보고 어떻게 해석해도 다 맞다고 생각한다. 답이 없는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대화를 할 때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 않으면 좋겠다.

-최근 설경구 씨에게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생겼다. 1990년대 이후 줄곧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였고, 그래서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기도 하고, 우상이 되기도 했다.

▶배우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우상’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 저에게 ‘아이돌’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팬들에게 고맙고 황송할 따름이다. 그분들에게서 많은 힘을 얻는다.

-그렇다면 자신의 우상은 누구인가.

▶제가 영화를 시작했던 1990년대에 한 선배님은 너무 부러운 존재였다. ‘한석규’라는 이름만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독보적인 존재였다. 모든 시나리오는 한석규에게 간다고 했으니 말이다. 당시 저처럼 영화를 처음 시작하는 친구들은 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한 선배님은 꿈도 못 꾸는 위치에 있어서 우러러봤다. 그것이 긍정적인 우상일 수 있겠다. 진심이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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