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경남 친근한 풍경 즐길수도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알몸의 남녀가 물놀이를 하고 있다. 그들 옆으로 여인의 얼굴같이 의인화된 해안 언덕의 모습이 마치 동화 같다. 자연과 동심에 대한 감성을 둥글둥글한 형태와 부드러운 색감으로 표현했다. 김윤민(1919~1999)의 작품 ‘신화’다. 그는 초현실주의적인 내러티브를 구사하는 오묘한 매력의 작품들을 남겼다.

	부산 근대미술의 맥락을 짚을 수 있는 ‘꽃피는 부산항 VI’ 전이 미광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위 작품은 김윤민의 ‘신화’. 미광화랑 제공

김종식(1918~1988)의 ‘구포 과수원’은 대담한 필치와 과감하고 강렬한 색채가 특징이다. 사물의 사실적 묘사를 탈피해 리듬이 느껴지는 자유로운 화풍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는 항상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니며 부산 항구와 사찰, 바닷가와 거리의 풍경 등을 주로 그렸다.

	김종식의 ‘구포 과수원’

미광화랑(부산 수영구 민락동)은 오는 20일까지 ‘꽃피는 부산항 VI’전을 연다. 이번 전시는 부산 근대미술사 맥락에서 엄선된 주요 작가 28인(김경 김종식 김윤민 서성찬 임호 김영덕 오영재 양달석 송혜수 전혁림 문신 강신석 현재호 등)의 작품 40여 점을 선보인다. 지난 다섯 차례의 전시에 빠졌던 정상복 안세홍 이의주 엄성관 등의 작품도 포함돼 있다. 1958년부터 2004년까지 부산 경남 근교의 풍경과 풍물을 담은 다양한 작품이 시대적 향수와 예술적 향기를 품은 채 관객과 만난다. 비록 궁핍한 시대를 살았으나 순수와 진정성을 잃지 않았던 부산 근대작가들의 작품 앞에서 그 시대의 추억과 향수, 사람 사는 사연을 느낄 수 있다. ‘꽃피는 부산항’전은 2009년 미광화랑이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열었던 제1회를 시작으로 올해 6회째 이어지는 연작전으로, 화랑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전시다. 그동안 부산의 작고 원로작가들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소개해왔기 때문이다. 미광화랑 김기봉 대표는 “부산 근대미술사에 독특한 개성이 있는 작가가 많이 있고, 그들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음에도 한국 미술사에서 누락돼 평가절하되는 현실이 안타까워 기획전을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며 “이번 전시가 부산 근대미술사의 사료로서 보탬이 되고 참고가 된다면 큰 보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오영재의 ‘수원지 풍경’

부산 최초의 서양화가 동인 ‘토벽회’, 1세대 작가들이 모여 1971년 결성한 ‘후기회’ 등 부산 근대화단을 이끌어온 미술그룹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40대 중반에 요절한 김경 작가의 마지막 작품 ‘절필’, 향토적인 서정성을 바탕으로 목가적인 자연 정경을 형상화한 양달석의 ‘소와 목동’, 부산화단 초기 추상미술의 독보적 경지를 구축했던 오영재의 ‘수원지 풍경’, 해녀와 소라의 작가로 불린 임호의 ‘해녀’, 설화적이면서 성애적 감성을 잘 조화시킨 송혜수의 ‘소와 여인’ 등이 걸려 있다. 지역에서 화업을 일군 이들이기에 남부 영남의 산과 강, 바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담은 풍경화도 볼 수 있다. 우신출의 ‘을숙도’, 전혁림의 ‘통영항 풍경’, 한상돈의 ‘청사포’, 이의주의 ‘해인사’ 등이 대표적이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