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1인 2역을 한 이병헌, ‘사도’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영조를 연기한 송강호, ‘남한산성’에서 주화파 최명길과 척화파 김상헌을 연기한 이병헌과 김윤석, 그리고 ‘안시성’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준 양만춘 역의 조인성을 기억하는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배우인 이들은 명연기로 각자 맡은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그런데 이들의 명연기 뒤에는 각 캐릭터를 완성할 수 있도록 화룡점정 역할을 한 분장감독 조태희가 있었다.

	조태희 분장감독이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용우 기자

명실상부 한국 사극영화 분장을 대표하는 조 분장감독은 앞서 언급한 영화 외에도 사극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역린’, ‘대립군’, ‘창궐’, ‘물괴’ 등과 현대극 ‘형’, ‘특별시민’, ‘악녀’, ‘변산’, ‘완벽한 타인’ 등에 참여해 ‘캐릭터의 디테일을 높여주는 분장사’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 그가 국내 최초로 분장 콘텐츠를 소개하는 전시회 ‘영화의 얼굴창조전’을 지난달 29일부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열고 있다. 기업 협찬 없이 분장으로 번 돈을 저축해 자비로 개최하는 전시회다.

지난해의 마지막 날 전시회장에서 만난 조 분장감독은 “시작은 1999년 임권택 감독님의 ‘춘향뎐’에 2주 실습으로 분장에 참여했고, 드라마 ‘명성황후’ 등을 거친 후 ‘엽기적인 그녀’를 70% 정도 맡아서 했다. 지금까지 한 우물만 파면서 분장이 영화의 다른 파트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어 아쉬웠다. 분장은 배우들의 연기에 묻혀서 자연스럽게 지나가지만 그 안에 디테일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분장 파트를 격상시켜주고 싶었다”고 이번 전시회의 의미를 밝혔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사용된 용주물 조각 비녀(왼쪽)와 이병헌. ㈜하늘분장 제공

오는 4월 23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그가 분장을 맡았던 영화 15편으로 구성된 광해관, 역린관, 남한산성관 등 총 7개 섹션에서 가발은 물론 수염, 장신구, 분장 도구 등 500여 점의 작품이 관람객을 맡는다. 지하 4개 층의 넓은 공간을 알차게 메우고 있는 작품들을 보면 조 분장감독이 대작 사극에 독보적인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일반 영화에서 소품이나 장신구는 협찬을 받은 후 반납하는 경우가 많다. 장신구를 제작하려면 제작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가 맡은 사극들은 모두 제작했으며, 한 번도 장신구나 가발이 겹친 적이 없다. 제가 대작 사극을 많이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현대극보다 사극에서 분장의 중요도가 높아진다. 분장으로 캐릭터의 특징을 더 잘 살릴 수 있고, 배우들의 변화 폭을 더 높일 수 있다”며 사극의 매력을 설명했다. 조 분장감독이 맡은 사극을 보면 분장의 깊이와 디테일, 그리고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남한산성’에서 망건을 잡아주는 관자의 크기를 조절해 주화파 최명길(이병헌)과 척화파 김상헌(김윤석)의 성격을 비교하는 식이다. ‘안시성’의 조인성은 ‘쌍화점’에서 꽃미남으로 나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상반된 이미지를 주고자 주근깨와 거친 피부톤을 부각시켰다.

	영화 ‘역린’의 현빈.

그렇다면 함께 작업한 배우 중 누가 기억에 남을까. “‘최종병기 활’, ‘남한산성’의 박해일 씨는 분장사를 가장 존중하는 배우였다. 사극 분장은 1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그 시간 동안 눈을 감고 흐트러짐 없이 가만히 있다. 분장을 마치면 항상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촬영장으로 가는데 그 모습에 감동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항상 배우들을 분장하지만 이병헌 씨는 ‘내가 연예인을 분장하고 있구나’라는 설렘을 갖게 하고, 송강호 씨는 편안하게 영화 이야기를 즐겨한다. 조인성 씨는 유쾌한 에너지로 상대가 힘든 것을 잊게 하는 능력이 있다”며 배우들과의 작업을 기억했다.

이번 전시회를 개최하기 위해 가장 힘들었던 부분 중 하나는 저작권이 있는 사진과 자료들의 허락을 받는 것이었다. “제작사, 투자배급사, 매니지먼트사 등 100여 곳을 1년 동안 직접 다니며 허락을 받았다”며 “대부분 회사가 도움을 줬다. 특히 조인성 씨가 ‘안시성은 제 작품이기도 하지만 실장님 작품이기도 하다’며 흔쾌히 승낙해줬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번 전시회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부산과 일본에서도 영화 팬들과 만날 예정이다. 그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전시회가 함께 열리면 더없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