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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를 찾아서 <31> 고성 운흥사

임란때 왜군에 죽창으로 맞선 승병들의 ‘호국 성지’

  • 국제신문
  • 박현철 기자 phc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8-15 18:44:34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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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가 창건
-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의 총본부
- 이순신 장군도 작전 계획 세워
- 국내 사찰 중 유일 영산재 지내

- 현존 최고 괘불 보물로 지정
- 장독대는 사진작가 발길 이어져

경남 고성군에서 삼천포항으로 향하는 국도변에 자리잡은 하이면 와룡리 와룡마을. 이곳에서 하이저수지를 지나 3㎞가량 산길을 더 달리면 목적지인 천년고찰 운흥사를 만난다. 중생대 ‘공룡의 무도장’이라 불리는 상족암 군립공원이 차로 15분 거리에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운흥사. 임진왜란 이전에는 사찰 건물이 29동에 달할 정도로 번성했다.
용이 굽이쳐 누운 형상을 닮아 명명된 와룡산 품에 안겨 있다. 1300여년 전인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의 본거지였던 호국사찰이었다.

■성벽 같은 돌담에 둘러싸인 절경

   
현존 최대 괘불과 호국사찰로 유명한 운흥사는 고즈넉하고 소박하면서도 가볍게 볼 수 없는 당당함을 품고있다.
사찰 곳곳엔 돌계단과 돌담이 눈에 띈다. 돌담은 촘촘하고 웅장해 장관이다. 성벽같이 단단하고 정교하다. 입구에 들어서면 보제루가 시야에 들어온다. 커다른 기둥 32개가 떠받치고 있다. 이 보제루를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넓은 마당에 우뚝 솟은 석탑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경내를 둘러보니 절을 감싼 산세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범종루도 보인다. 범종·법고·목어·운판 등 4종류의 북이 설치돼 있다. 조석으로 세상 평온을 기원한다. 범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 법고는 육지에 사는 생물, 목어는 물에 사는 생물, 운판은 하늘에 사는 모든 생물을 의미한다. 4개의 북은 삼라만상을 다 담았다.

석탑 뒤로 대웅전(도문화재 제82호)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한눈에 봐도 고색창연할 정도로 정취가 그윽하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조선 시대의 독특한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대웅전 옆으로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과 관세음보살을 모신 보광전이 보인다. 그 뒤로 영산전과 산신각이 눈에 들어온다.

■보물로 지정된 현존 최대 괘불

   
가장 한국적이라는 장독대로 운흥사는 더욱 운치있고 정겨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유독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보물이 하나 있다. 괘불 및 궤로, 보물 제1317호로 지정돼 있다. 괘불은 야외 법회 때 걸어놓는 대형 불화이며, 궤는 괘불을 보관하는 상자다. 가로 768㎝, 길이 1136㎝로 국내에서 현존하는 괘불 중 최대 규모다. 성인 여러 명이 들어야 겨우 이동이 가능할 정도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여러 불상이 화면 가득 그려져 있다. 화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그려진 석가모니불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두터운 법의를 걸쳤다. 어깨에 닿을 정도로 처진 귀는 부처의 자비로움을 보여준다. 조선 영조 6년(1730년) 승려 화가 의겸이 그렸다. 앞면은 삼베로 겹겹이 발라 7가지 색깔의 물감으로 그렸고, 뒷면은 닥종이로 돼 있다. 뒷면에는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진언(석가의 깨달음)과 영조의 어인(임금의 도장)이 새겨져 있다. 조상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그린 불화인 감로탱화, 의겸이 남긴 또 다른 작품인 관음보살도, 명부전 목조각상 등 수많은 문화재도 빠뜨리지 말자.

절대 놓쳐선 안 될 이색공간도 있다. 장독대다. 본래는 대웅전과 보광전 사이 마당에 있었지만 괘불대(괘불을 걸어 놓을 수 있는 대) 설치 공사로 인해 법당 뒷편으로 옮겼다. 돌과 황토를 겹겹이 쌓아 올리고 기와로 덮은 동그란 돌담 안에 장독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운치 있고 정겨워 가장 한국적이라는 이 장독대만을 앵글에 담기 위해 사시사철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승병 6000명 길러낸 호국사찰

운흥사는 인적 드문 와룡산 중턱에 숨어 있어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려 6000명을 이끌고 왜적과 싸웠던 호국사찰로 유명하다. 당시 영남 서부지역 승병의 총본부였다. 이순신 장군도 수륙양용 작전을 펼치기 위해 세 번이나 이 절을 찾았다. 산 속이지만 바다와 그리 멀지 않아 이곳에서 작전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조선수군과 승병이 연합해 고성 앞바다에서 길목을 차단하자 왜적은 결국 운흥사로 쳐들어왔다. 조총으로 무장한 왜적에 스님들은 죽창으로 맞서 장렬히 산화했다. 가장 많은 승병이 산화한 날로 기록되는 음력 3월 3일이면 숨진 영령들을 위한 영산재가 열린다. 어명으로 시작된 영산재는 올해로 288년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국내 사찰 중 유일하게 승병 제사를 지내고 있다. 운흥사 괘불은 1년 중 이날 하루만 일반에게 공개된다. 예부터 이 재를 세 번만 보면 극락 간다는 말이 전해져 오는 데다 초대형 괘불까지 볼 수 있어 이날 전국의 불교신자들이 구름처럼 몰려 온다. 이 괘불을 왜적이 일본으로 반출하려고 삼천포항에서 세 번이나 배에 실었으나 심한 풍랑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구전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임진왜란 이전 사찰 건물은 29동에 달했고, 딸린 암자만 9개였을 정도로 번성한 운흥사는 아쉽게도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 이후 효종 2년(1651년)에 중창해 오늘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지금은 천진암과 낙서암 등 두 개의 부속암자가 남아 있다.

박현철 기자 phcnew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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