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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를 찾아서 <28> 창원 구룡사

화마에 잿더미 되고도 … 불심으로 다시 일어선 기도도량

  • 국제신문
  • 노수윤 기자 synho@kookje.co.kr
  •  |  입력 : 2018-06-27 18:50:19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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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침탈에 맞선 구하스님
- 1927년 구룡산 자락에 창건
- 1973년 도로편입, 1982년 불
- 잇단 시련 불구 신도 6만 여명
- 부처 대신 관세음보살상 모셔

낙남정맥은 낙동강의 남쪽을 따라 이어지는 산줄기로, 지리산 영신봉에서 출발해 진주 하동 사천 창원을 거쳐 김해 분성산에서 그 생명을 다한다. 악계에선 김해 분성산 대신 김해 백두산까지로 보기도 한다. 창원의 정중앙에 위치한 구룡산도 낙남정맥의 한 봉우리다. 봄이면 인근 천주산 못지않게 아름다운 철쭉군락을 자랑한다. 이 구룡산의 정기가 모인 곳이 기도 도량이자 관음 도량인 구룡사다.
   
경남 창원시 의창구 소답동 구룡산 자락에 자리 잡은 구룡사. 여느 절과 달리 사천왕상이 없고 대웅전 대신 설법전을 갖추고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 도량이다. 노수윤 기자
남해고속도로 동마산IC에서 소계지하차도를 거쳐 창원초등학교까지 간 후 남해고속도로 아래에 박스형으로 개설된 너비 3m의 도로를 지나면 바로 절이 나온다. 창건 당시에는 이곳이 아닌 창원향교 옆에 위치했다. 포교 중심의 사찰인 만큼 마을과 가깝고 대중이 찾기 수월한 곳에 자리했다.

■일본 불교에 맞선 도량

   
구룡사 설법전의 주불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 노수윤 기자
구룡사는 통도사의 말사로 1927년 통도사 주지였던 구하스님의 염원에 의해 창건됐다. 당시 일제는 우리나라 침탈과 동반해 일본 불교를 들여왔다. 구하스님은 이에 맞서 우리나라 불교의 맥을 잇고 사회교육·구호사업을 펼칠 인재 양성이 절실해 창원시 의창구 소답동에 절을 세웠다. 구룡사 창건 후 창원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포교 활동이 펼쳐지는 등 근대 불교 포교의 효시가 됐다.

부침과 위기가 거듭되기도 했다. 1973년 남해고속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사찰 부지가 편입돼 새로운 자리로 이전을 물색했고 현재의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당시 주지인 황벽 스님은 당시 논이던 이곳을 매입해 50여 ㎡ 규모의 간이 법당과 60여 ㎡의 요사채 등 2동을 임시로 마련했다. 사찰이라고 하나 번듯한 대웅전이나 지장전, 관음전 등이 없이 법당 하나에 스님이 기거할 공간뿐인 아주 자그마한 절이었다.

그 후 창원시가 경남의 도청 소재지가 되면서 행정과 공업의 중심 도시로 변모했고 구룡사도 포교 중심의 사찰로 면면을 갖췄다.

1982년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쳤다. 새 주지로 지형 스님이 절에 온 지 3일 만에 누전으로 법당이 전소됐다. 졸지에 법당조차 없는 명맥만 절이 된 것이다.

지형스님은 법당에 모셨던 석조석가여래좌상을 요사채에 봉안하고 절을 다시 세울 의지를 다졌다.

■불같이 일어나다

잿더미로 변한 구룡사를 재건하기 위해 지형스님이 밤낮없이 정진 기도와 불사에 들어간 후 차츰 신도가 모이는 등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지 스님과 신도 등의 기도와 노력으로 마침내 1984년 현재의 설법전을 신축했다.
절의 진입로가 남해고속도로 아래 개설된 좁은 박스형 도로여서 불사에 필요한 자재 수송에 큰 제약이 따랐고 사찰 주위가 민간 소유의 밭인 데다 그린벨트여서 불사가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신도들이 한국도로공사 등 관계 기관에 진입로 확장을 수차례 건의했으나 수십억 원이 소요된다며 지금까지 그대로 두고 있다. 진입로도 좁고 불사에 필요한 재정력도 부족한 와중에도 설법전 옆에 범종각을 마련하고 앞에는 관음전을 마련하는 등 사찰로서의 면모를 갖춰갔다.

구룡사는 현재의 모습을 갖춰갔으나 이를 총괄 지휘했던 지형 스님이 2006년 갑작스럽게 열반했다. 절을 다시 세웠을 뿐 지역 내 사찰 인지도가 미약한 상태에서 2006년 11월 신공 스님이 주지로 부임했다. 신공스님은 명실공히 지역 사회의 대표 도량으로 거듭나기 위해 기도와 포교에 나섰다. 신공스님은 법당에서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기도만 열심히 하면 불사는 이뤄진다는 신념으로 기도와 신도 교육에 매달렸고 이후 신도가 구름같이 모여 현재 5만~6만 명에 이른다. 자연히 불사도 뒤따라 요사채인 안심당을 중건하고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 모신 도량

구룡사는 여느 절과 달리 대웅전 대신 설법전이 설치돼 있다. 또 설법전의 주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닌 금동의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이다. 좌우에는 약사여래불과 문수보살을 봉안했다. 설법전 앞의 관음전에도 관세음보살상을 모신 관음 도량이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은 손이 1000개에 달하고 손안에 눈이 있는 관세음보살이다. 이렇게 눈과 손이 많은 것은 많은 눈으로 대중을 살펴보고 다양하고 많은 방법으로 대중의 어려움을 보살핀다는 뜻이다.

신중단에는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104위 신장탱화가 장엄하게 봉안되어 있고 문수보살과 약사여래불 뒤 천불탱화도 예사롭지가 않다.

절이 잿더미 속에서 불같이 일어나고 설법전과 관음전에는 늘 대중을 살펴보는 관세음보살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기도하면 영험하게 잘 되고 사업 역시 나아진다는 신도가 많다. 특히 신공 스님이 부임한 후 대대적인 불사와 포교, 기도에 나섰고 해마다 학업 성취 100일 관음 기도 등 각종 기도가 이어졌다.

올해 4월에는 무언 스님이 주지로 부임했다. 교육과 실천의 도량으로 또 한 번 거듭나기 위해 신도회도 더욱 탄탄하게 구성했다. 이를 뒷받침할 산하단체로 봉사회, 유마거사회, 법등, 합창단 등도 정비했다.

무언 스님은 “전통사찰 대부분이 산 중에 있어 유서는 깊으나 대중 친화적인 포교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반면 구룡사는 대중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구룡산 자락에 자리 잡았고 신도도 많아 현재에 맞는 포교와 지역 봉사 등을 활발하게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수윤 기자 synho@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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