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두 살 나이에 남편과 사별
- 졸지에 고등학생 아들까지 생겨
- 서로 알아가는 과정 세심히 묘사
- 감정 과잉 없고 대사도 현실적
- 우리 사는 일상 느낄 수 있을 것

감독이 사랑하는 배우이자 여성 관객들의 지지를 받는 배우 임수정이 ‘환절기’에서 섬세한 연출이 보여준 이동은 감독과 만나 영화 ‘당신의 부탁’(개봉 19일)으로 찾아온다. 특히 데뷔 이후 처음으로 엄마 역할을 맡아 깊이 있는 감정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 ‘당신의 부탁’에서 죽은 남편의 열여섯 살 아들을 맡게 되는 서른두 살의 효진 역을 맡은 임수정. 명필름·CGV아트하우스 제공

‘당신의 부탁’은 사고로 죽은 남편이 남기고 간 열여섯 살 아들 종욱(윤찬영)을 효진(임수정)이 갑자기 떠맡게 되면서 일어나는 가족간 갈등과 화해의 감성 영화다.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상을 수상,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 제24회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 넷팩 심사위원상 수상 등의 화려한 이력이 눈길을 끈다.

서른두 살의 나이에 졸지에 고등학생 아들을 두게 된 효진을 연기한 임수정은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갑자기 맡게 된 아들을 대하는 어색함,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 등 쉽지 않은 인물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특히 성인 못지않은 연기를 보여주는 윤찬영 군과 호흡을 맞추며 영화의 중심을 잡으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스스로 “이번 영화를 통해 연기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됐다”는 임수정과 처음 엄마 역을 맡은 ‘당신의 부탁’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신의 부탁’ 시나리오를 읽고 어떤 매력을 느꼈는가? 이동은 감독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임수정 씨가 출연한다고 해서 너무 기뻤다”고 하더라.

▶먼저 이런 시나리오가 손에 쥐어져서 반가웠다. ‘당신의 부탁’은 제가 연기한 엄마뿐만 아니라 다양한 엄마가 등장하고, 효진의 일상을 쫓아가면서 깊은 감정을 보여준다. 이 감독님이 직접 쓴 대사도 공감가고, 감정의 과잉 없이 효진과 찬영이가 서로를 알아가는 일상의 모습이 우리가 사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좋았다. 이런 결의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감독은 어떤 사람일지 호기심이 생기면서 같이 하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 미팅부터 이 감독님과 정서적으로 잘 맞고 대화가 통했다. 같이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었다.

-효진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죽은 남편의 아들을 선뜻 받아들인다.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가?

▶관객들에게 효진이 아들을 덜컥 데려오는 과정이 납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효진의 심리 상태가 크게 작용했을 터인데, 남편을 잃고 2년간 홀로 지내면서 상실감과 공허함, 슬픔, 우울감이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는 어떤 중요한 선택을 할 때 대책 없이 확 해버리는 증상도 있다고 하더라. 그리고 효진이 종욱에 대해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오빠를 닮았더라”라고 말하는데, 죽은 남편의 아들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죽은 남편은 너무 무책임하다. 효진도 몰랐던 두 번째 아내가 있었던 것 아닌가.

	사고로 죽은 남편이 남기고 간 열여섯 살 아들 종욱을 효진이 갑자기 떠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인간관계를 그린 영화 ‘당신의 부탁’. 명필름 제공

▶종욱이 친엄마를 찾아다니는데, 그 과정은 효진이 남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쩌면 종욱이의 엄마를 찾아주는 과정은 남편을 제대로 떠나보내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효진과 종욱이 남편의 제사를 지내는 장면은 크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 역은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다. 힘든 점은 없었나?

▶만일 효진이가 직접 낳은 아들이라면 연기하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극중 효진은 서른두 살의 젊은 여성으로, 갑자기 생긴 열여섯 살 아들 때문에 당혹스러워한다. 그래서 엄마 역이지만 접근하기 어렵지 않았다.

-효진이는 자신의 엄마와 작은 일로 계속 싸운다. 좋은 말로 시작했다가도 간섭과 관심의 사이에서 싸우게 되는데, 진짜 모녀관계 같았다.

▶효진이가 엄마와 다투는 장면의 대사는 시나리오에 있는 그대로였다. 너무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그려서 놀랐다. 엄마 역을 맡으신 오미연 선생님께 “친엄마한테 하는 거랑 너무 똑같다”며 “화내고 짜증내고 엄마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한다”고 했더니 “그게 엄마와 딸이지” 하시더라. ‘당신의 부탁’을 하면서 엄마에 대한 존재에 대해서 여성으로서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아직 결혼도 안 했지만 미래에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

▶막상 엄마가 되면 어떨지 그 감정을 모르겠다. 어떤 엄마라기보다는 엄마가 되더라도 우리 엄마는 따라가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2001년생인 윤찬영 군과 호흡을 맞췄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꽤 묵직하게 연기를 하더라.

▶찬영이는 딱 종욱이 같았다. 같이 있는데 굳이 말을 나누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더라. 영화에서도 그런 느낌이 있어서 애써 빨리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극중 효진와 종욱이가 천천히 마음을 여는 것처럼 실제로 천천히 알아가겠다고 했다. 너무 좋은 호흡으로 연기를 했다.

-영화제 심사위원이나 여성영화제 참여 등 영화계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또 상업영화와 드라마, 저예산 독립영화를 오가며 활발하게 출연하고 있다.

▶관심이 있어서 그렇다. 심사위원을 맡아서 단편영화나 독립영화를 보니까 수준도 높고, 완성도도 좋았다. 이런 작품들이 더 알려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배우로서도 참여하고 있다. 저도 천만 영화에 목마르다. 더 열심히 해서 상업영화로 천만 영화도 하고, 제가 가진 영향력이 있다면 계속 독립영화에도 출연하겠다.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에서 할 수 없는 연기적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어서 배우 임수정에게도 좋은 상호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