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식 냉모밀과 비슷한 ‘분짜’
- 생라임 즙 넣은 느억맘 소스에
- 쌀국수 등 적셔먹는 베트남 요리
- 깻잎 채썰어 한국적 입맛 더해줘
- 새콤달콤 시원해 고정메뉴 낙점
- 에그누들 튀겨 해산물 소스 얹은
- ‘시푸드 차우더’ 술안주로 그만
- 아삭한 공심채 볶음도 입맛에 딱
여름은 끝날 줄을 모르고 이맘때면 대부분 휴가는 다녀와서 기다리는 낙도 없을 때다. 이때 내가 휴가로 떠났던, 또는 떠나고 싶었던 나라의 음식으로 아쉬움을 달래면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이 즐겨 떠나는 휴가지 중 한 곳이 베트남이다. 베트남이라면 쌀국수만 생각하겠지만 쌀국수 면을 이용한 시원한 요리가 있다는 건 사람들이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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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짜는 익힌 쌀국수와 채소, 구운 돼지고기를 느억맘 소스에 담갔다 먹는 냉국수 요리다. 아삭한 채소와 새콤하면서 감칠맛 나는 소스가 여름에 특히 잘 어울린다. |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의 스수아(051-817-5552)는 비스트로다. 다양한 요리를 내지만 그중에 분짜가 눈길을 끈다. 분짜는 베트남 면 요리 중 하나다. 먹는 방법으로 보자면 쯔유에 담가 먹는 일본식 냉모밀과 비슷하다. 느억맘 소스에 양상추, 고수 등 채소와 미리 삶아낸 쌀국수, 돼지고기 목살 양념구이를 넣은 뒤 한 번에 건져서 ‘호르르륵’ 먹기 때문이다.
여기에 빠지면 안 되는 게 생라임이다. 생라임 한 조각을 최대한 꾹 짜서 즙을 느억맘 소스 그릇 속에 넣는다. 윤상현 대표는 “라임과 레몬의 가장 큰 차이는 향이다. 레몬은 상쾌하고 시큼한 맛과 향이 지배적이지만 라임에는 달콤한 향이 있어 레몬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생라임은 레몬보다 3배 정도 비싸지만 그래도 스수아에선 생라임을 고집한다. 윤 대표는 “베트남 요리의 수준을 좌우하는 건 라임과 고수, 느억맘 소스”라고 강조했다. 윤 대표 부부는 매년 베트남으로 음식 재료 탐방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현지 마트에 빠지지 않고 들러 로컬에 인기 있는 소스, 식재료를 꼭 챙겨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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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짜의 느억맘 소스에는 생라임을 짜 넣어야 제맛이다. |
쌀국수 면은 중면 정도의 굵기를 쓴다. 우리나라 소면처럼 가느다란 버미셀리 면을 현지에서 쓰지만 이 면은 삶아내면 서로 들러붙어 금방 불어버린다. 불어터진 짜장면에 젓가락을 꽂으면 그릇 모양대로 면 덩어리를 들어 올릴 수 있는 것처럼 버미셀리 면은 금방 불어나 피했다고. 대신 주문하면 바로 삶아내는 중면 쌀국수를 쓰면 분짜를 다 먹을 때까지 면이 불지 않는다. 윤 대표는 “본래 쌀국수는 물에 2~3시간 불려놨다가 먹기 직전 뜨거운 물에 살짝 담갔다 꺼내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오히려 너무 금방 퍼져버려서 우리는 건면 상태로 뒀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삶아낸다”고 했다.
느억맘 소스는 우리나라 액젓처럼 생선에 소금을 쳐 발효한 소스다. 하지만 등급에 따라 맛이나 향이 천차만별이다. 스수아에서 분짜에 쓰는 느억맘 소스는 감칠맛은 있지만 특유의 비린내나 코를 찌르는 젓국 냄새는 전혀 없었다. 현지에서는 훨씬 짜게 해서 양도 조금만 준다고 했다. 적셔 먹는 수준이 아니라 살짝 찍어 먹는 방식이었던 거다.
부부는 한국식으로 바꾸면서 소스를 더 부드럽게 하고 양을 늘려 풍덩 빠뜨려 먹도록 했다. 시원해야 하므로 각얼음도 2, 3개 넣었고 채소도 다져 넣었다. 담가 먹는 채소는 깻잎을 아주 얇게 채 썰어서 고수의 향을 눌러주고 한국적인 향을 더했다.
분짜는 양상추의 식감부터 아삭하게 시작한다. 소스는 상큼하고 입술에 닿는 쌀국수 면이 매끈매끈해서 호로록 들이켜는 재미가 있다. 진하지 않게 간장으로 양념해 구워낸 돼지 목살은 부드러워 모든 재료가 잘 어우러진다. 한입에 넣기 좋게 말려 있는 국수와 재료를 한입 가득 넣고 우적우적 씹으면 상쾌하다. 국물까지 한 모금 마시면 더 맛있다. 한 번 맛보고 나면 더운 여름의 이국적인 냉국수 요리로 꼭 다시 생각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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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푸드 차우더는 고소하면서 부드러워 술술 넘어간다. |
다른 베트남 요리를 부탁하자 에그 누들을 활용한 해산물 수프인 시푸드 차우더를 내왔다. 달걀노른자와 밀가루를 섞어 만든 에그 누들은 아주 가늘고 맛도 가벼워 베트남 음식에서 많이 쓰인다. 이것을 새 둥지 모양처럼 만들어 튀긴 뒤 그 위에 해산물 소스를 얹었다. 그러면 면에 소스가 배여 들어 숟가락으로도 잘릴 만큼 나긋나긋해진다. 그때 오징어, 새우 등의 해산물과 같이 떠먹으면 된다. 술안주로도, 식사로도 좋다. 무엇보다도 부담스럽지 않은 간이라 부드럽게 술술 넘어간다. 해물도 적당히 익혀 질기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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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삭하면서 짭쪼름한 공심채 볶음은 좋은 밥반찬이다. |
공심채 볶음도 입맛에 딱 맞았다. 보통은 굴소스와 마늘 다진 것, 느억맘 소스 등을 넣어 코에 훅 끼치는 향에 놀라기도 한다. 스수아의 공심채 볶음에는 굴소스가 안 들어가고 느억맘 소스와 다진 마늘, 베이컨으로 맛을 냈다. 짜지 않고 적당한 간에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줄기와 숨이 죽어 보드라운 잎이 밥반찬으로 잘 어울린다. 공심채는 모닝 글로리라고도 부르는데 김해 동상동 전통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스수아(Ce Soir)는 프랑스어로 ‘오늘 밤’이라는 뜻이다. 가게는 마치 1990년대 대학교 앞 카페 같은 느낌이다. 나무판자로 장식된 한쪽 벽은 트위터 아이디로 가득하다. 윤 대표는 “아내와 트위터로 만났다. 트위터가 한창 인기를 끌 때 오시는 분들이 자신의 아이디를 남기는 게 방명록처럼 돼서 지금은 추억을 간직한 인테리어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스수아의 메뉴는 부정기적으로 바뀌는데 윤 대표가 그때그때 ‘꽂히는’ 요리들로 바뀐다. 분짜는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라 메뉴에서 사라질 걱정을 안 해도 된다.
글·사진=최영지 기자 jador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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