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주일간 빛·시계 차단한 방에서
- 혼자 술·쌍욕·짜증 부리다
- '누가 실제 연산군 알겠는가'
- 생각 미치자 연기부담 덜게 돼

- 스핀오프로 '연산군' 찍게되면
- 좀 더 입체적 캐릭터 보여주고파
- 실제 그를 만나게 된다면
- 극으로 치달은 이유 묻고싶어

반듯한 '범생이' 이미지의 김강우가 180도 달라졌다. 21일 개봉한 영화 '간신'에서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폭군이자 광기에 휩싸인 인물 연산군을 연기하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연산군 역할은 이전에 '연산일기'(1988)의 유인촌, '왕의 남자'(2005)의 정진영이 연기했는데, '간신'에서 연산군으로 빙의한 김강우는 이전보다 더욱 충격적인 연산군의 모습을 보여준다. 김강우의 연산군은 폭군 이미지와 더불어 시와 그림을 사랑했던 타고난 예술가이자 비운의 왕으로 그려졌다. 그는 슬픔과 분노, 광기를 가진 연산군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장면마다 눈빛 연기와 대사 톤을 달리하는 등 부단한 노력을 했으며, 촬영 내내 절제되지 않는 분노를 가슴에 품어야 했다.

'간신'은 조선 최악의 폭군 연산군(김강우)과 그를 마음대로 쥐락펴락했던 희대의 간신 임숭재(주지훈)의 권력 암투를 조선 팔도의 1만 미녀를 강제 징집했던 채홍 사건을 곁들여 새롭게 조명한 영화다.


-'간신'의 기자 시사 이후 김강우 씨의 광기 어린 연산군 연기가 화제였다.

▶연산군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이빨 드러낸 맹수와 독사, 사슴 목을 문 사자의 사진을 방 안에 붙여 놨다. 또 촬영을 앞두고 방을 하나 얻어 일주일간 햇빛을 다 차단하고, 시계도 없이 시간이 흘러가게 했다. 식사도 그 안에서 하고, 술을 종류별로 다 쟁여 놨다. 그러다가 5일쯤 지났을 때 혼자 쌍욕도 하고 짜증도 부리다가 '지금 살고 있는 사람 중에 누가 실제 연산군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 생각대로 밀어붙이자고 하면서 편안해졌다.

	영화 '간신' 스틸컷.

-연산군 캐릭터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했다. 그래서 부담감이 있었겠다.

▶생각할수록 부담감이 커져서 아예 신경 안 쓰려고 했다. 정진영 선배님의 '왕의 남자'는 촬영 중간에 혹시 겹치는 모습이 있지 않나 해서 찾아봤다.

-이번 연산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많았던 것 같다.

▶연산군을 더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는데 연산군을 그린 영화가 아니라서 그럴 수 없었던 것이 아쉽긴 하다. 스핀오프로 '연산군'을 찍는다면 또 하고 싶다. 이만한 캐릭터가 없는 것 같다.

-연산군이 채홍으로 궁궐에 들어와 간택된 단희(임지연)와 설중매(이유영)를 성행위 하게 하고 그림을 그리는 장면은 무척 선정적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선정적이고, 가학적이고, 폭력적이었다. 이 장면을 촬영할 때 두 여배우가 가장 힘들었을 테고, 나 역시 힘들었다. 하지만 그때 내가 머뭇거리면 촬영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어서 아주 뻔뻔하게 임했다. 두 여배우에게 미안한 것은 촬영하면서 사근사근하게 대하지 못한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에너지도 없었고, 또 영화 상황처럼 나를 좀 어렵게 대하는 것이 연기하기에 나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엔딩에서 우글거리는 돼지들 사이에서 발가벗겨진 연산군이 등장한다. 알몸으로 돼지와 촬영하는 게 어땠나.

▶돼지들이 아주 컸다. 무서웠다. 바닥에 소품용 피를 뿌렸는데, 거기에 돼지들의 똥, 오줌이 섞였다. 오물 위에서 촬영해 피부병에 걸리기도 했다.

-실제 연산군을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왜 그렇게 극으로 치달았는지 물어보고 싶다. 아마 자신도 모르게 갔을 것이다. 활을 당기다가 놓아서 어쩔 수 없이 달린 것이다. 영화에서 임숭재에게 자신을 멈춰달라는 뜻의 대사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 캐릭터를 위해 고군분투한 '간신'의 배우들

	임지연

'간신'의 배우들은 자기의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각자 남다른 노력을 해야 했다.

희대의 간신 임숭재 역할을 맡은 주지훈은 극 중 검술과 검무를 자유롭게 구사하기 위해 액션 스쿨을 다니며 특별 트레이닝을 받았다. 특히 검무를 담당한 정의숙 안무 감독은 "검무를 배우기 위한 기본적인 체력을 기르기 위해 많이 노력했고, 또 다른 배우들만큼 따라가기 위해 검무 연습 역시 배로 열심히 했다"며 주지훈의 열의를 칭찬했다.

김강우 역시 극 중 연산군과 임숭재의 검무 탈춤 장면을 위해 무용 연습에 매진했다. 또 화가 못지않은 그림 실력을 자랑했던 연산군을 더욱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직접 작가를 만나 시연을 보고 붓을 잡는 방법을 그대로 따라했다. 김강우는 "먹과 물로 명암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죽음 탓에 연산군에게 복수심을 가진 단희 역을 맡은 임지연은 검무를 추는 장면이 많았다. 그래서 촬영 2개월 전부터 기본적인 검무 동작을 익히며 작품을 준비했다.

임지연은 "칼춤을 처음 추는 것이라 생각보다 어려웠고, 칼을 쓴다는 데 두려움이 있었지만 점점 재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런 노력의 결실은 촬영 현장에서 강렬하고 단아한 춤사위로 표현됐다.

조선 최고의 명기 설중매로 분한 이유영 역시 촬영 2개월 전부터 소리와 한국 무용을 연습했다. 조선 제일의 명기인 만큼 노래와 춤 모두 완벽히 소화해야 했던 이유영의 실력은 스크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