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금 에로영화 감독과 사랑에 빠지는
- 과거 CF아역스타 출신 배우 역 맡아
- 윤계상과 7년만에 다시 만나 편하게 작업
- 현재 임상수 감독 '나의 절친 악당들' 촬영

큰 키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로 도회적 이미지를 갖춘 고준희가 영화 '레드카펫'(23일 개봉)에서 발랄한 캐릭터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레드카펫'은 극장용 영화를 꿈꾸는 19금 에로 영화감독 정우(윤계상)가 과거 CF 아역 스타였던 은수(고준희)를 만나 사랑을 꿈꾸고, 스태프들과 힘을 합쳐 영화를 제작한다는 내용이다.

고준희는 아역 스타였으나 집안 문제로 해외에서 살다가 정우와 함께 옥탑방 생활을 하는 은수를 맡아 로맨틱 코미디풍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아역 스타에서 재기에 성공한 톱 배우 모습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매력을 발산한다.

현재 임상수 감독의 '나의 절친 악당들'(가제)을 촬영 중인 고준희를 지난 20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고준희'하면 먼저 단발머리가 떠오른다. 단발머리가 참 잘 어울린다.

▶그렇다. 인지도는 높지만, 정작 대표적인 작품은 떠오르지 않는 특이한 케이스인 것 같다. 2003년 드라마 '나는 달린다'로 스무 살 때 데뷔했다. 공백기를 거쳐 다시 일하면서 2006년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 등에 출연했는데 기대만큼 시청률이 안 나오고, 영화 '걸스카우트'(2008)의 개봉이 미뤄지면서 힘들었다. 그즈음 이름을 본명인 김은주에서 고준희로 바꿨고, 단발머리 스타일로 변신했다. 그러니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이후 드라마 '추적자' '야왕'과 영화 '결혼전야' 등에 연달아 출연하면서 캐릭터에 맞춰 헤어 스타일을 유지했다. 지금은 대중이 좋아하는 내 모습을 유지하면서 일을 즐기려 한다.

-'레드카펫'에서 은수는 지금까지 고준희 씨가 보여준 캐릭터 중 가장 잘 어울렸다.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지난해 '결혼전야'를 찍고 있을 때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받았다. 시나리오도 재미있었고, 윤계상 오정세 조달환 선배님들이 먼저 캐스팅돼 있어 빨리 결정할 수 있었다. 당시 목 디스크 때문에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쉬지 않고 연기하고 싶기도 했다.

-윤계상 씨와는 2007년 드라마 '사랑에 미치다'에서 호흡을 맞췄다. 7년 만에 다시 만나니 어떤 느낌인가.

▶'사랑에 미치다'는 윤계상 선배님이 서른 살 때 제대 후 첫 작품이었고, 나는 스물세 살이었다. 이제는 같은 30대다. 이번 영화의 분위기가 밝고 희망적이라서 그런지 지금이 더 밝고 어려진 느낌이다. 편집된 장면 중 차 안에서 키스 신이 있었는데, 자꾸 웃음이 나서 "웃지 마, 웃지 마"하면서 이를 꽉 깨물고 촬영했다. 스물세 살 때는 떨렸는데, 이제는 앵글과 각도까지 이야기할 정도가 됐다. 편하니까 더 좋았다.

-'레드카펫'은 에로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에로 세계가 자주 등장한다. 에로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처음 본 것이 중1 때다. 새벽에 케이블 채널에서 봤다. 세 살 어린 남동생과 엄마에게 이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함께 봤다.

-'레드카펫'은 에로 영화감독 출신인 박범수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많다. 어떤 장면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는가.

▶아들이 독립영화를 하는 줄 아는 엄마가 병을 앓고 있는 아빠와 함께 촬영 현장에 오셔서 통장을 건네줄 때다. 엄마 역할을 하신 분이 연극배우이신데,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어서 더욱 리얼리티가 살았다.

-현재 임상수 감독의 '나의 절친 악당들'을 촬영하고 있다. 어떤 역할인가.

▶교통사고 현장에서 돈 가방을 발견한 청춘들이 꿈을 향해 가는 이야기다. '레드카펫'과 전혀 다른 캐릭터로, 폐차장에서 살면서 견인차 모는 아이다. 거친 캐릭터인데 해보고 싶었던 역할이고,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다. 아직 '고준희'하면 대표작이 없다.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와 내가 하고 싶은 연기를 잘 접목해 대표작을 만들어가려 한다.


# 극장용 영화 데뷔 위해 고군분투 박범수 감독

- 자전적 이야기로 에로영화 감독 출신 편견과 싸워
- 270여편 연출… 레드카펫 속 자기 에피소드 담아

박범수(사진) 감독의 '레드카펫'은 2012년 부산영상위원회 영화기획 개발지원작에 선정된 부산국제영화제 BFC 피칭 수상작이다.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BFC 피칭 당시 박 감독은 많은 영화 제작자들 앞에서 영화 '레드카펫'을 설명할 때 첫 마디에 "나는 에로 영화감독 출신입니다"라고 말했다.

맞다. '레드카펫' 연출을 맡은 박범수 감독은 에로 영화감독이다. 과거 270여 편의 에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속에서도 인용되듯 '타이탕닉' '해준대' '아이덴찌찌' '패밀리가 쌌다' 등 흥행작 제목을 패러디해 에로 영화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영화 속 정우(윤계상)처럼 극장용 영화를 연출하는 것이었다.

박 감독은 "처음에는 휴먼 코미디 장르 영화를 만들고 싶어 시나리오를 썼었는데, 사람들을 만나면 시나리오 얘기는 30분 정도만 하고 '성인영화 어떻게 되느냐', '성인영화 어떻게 만드냐'는 질문을 2~3시간 물어보더라. 그래서 이게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겠고, 성인영화에 종사하는 사람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획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실제 겪었던 에피소드와 주변의 다양한 캐릭터를 영화에 반영했다. 예를 들어 '레드카펫'에 등장하는 에로 영화 촬영 현장이나 부모님께 에로 영화감독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독립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말하는 것들은 박 감독의 경험담이다.

"주변에서 다들 극장용 영화 연출을 하지 말라고도 했고, 성인영화를 찍었던 거는 경력이 아니라 마이너스라는 말을 많이 했다"는 박 감독.

그는 에로 영화감독의 편견을 거두고 자신을 봐줬으면 하는 생각으로 더욱 열심히 영화를 만들었고, 그 생각으로 힘을 냈다. 박 감독의 진정성이 담긴 '레드카펫'은 한 에로 영화감독의 꿈을 담은 소중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