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부산에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 영화의 성찬이 차려졌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수많은 영화팬이 영화제를 찾는 이유는 스크린 성찬을 즐기면서 그 성찬을 만든 셰프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많은 감독과 배우를 초청해 다양한 만남의 자리를 마련한 BIFF는 미슐랭가이드 별 셋의 레스토랑이라 할 수 있다.

BIFF는 1996년 1회 때부터 지금까지 국내의 그 어느 영화제보다 많은 세계적인 감독과 스타를 초청했다. 그들은 기꺼이 영화의 도시 부산을 찾았으며, 부산은 물론 전국에서 몰려든 영화팬은 환호했다. BIFF가 다른 국제영화제와 가장 차별되는 점은 남포동과 해운대를 가득 메운 영화팬의 뜨거운 열기다. BIFF를 찾은 영화제 게스트들은 부산 시민이 보여준 영화를 향한 열정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으며, 그 열기는 세계 영화계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에 따라 BIFF는 세계에서 관객의 호응이 가장 높은 영화제로 알려졌다.

이용관 BIFF 집행위원장은 "BIFF를 한 번 다녀간 게스트들은 대개 '가족'과 같은 관계가 된다. 그래서 BIFF를 다시 찾는 게스트가 많다"며 "물론 비즈니스를 위한 측면도 있지만, BIFF 사람들의 인간적인 매력에 끌리거나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에 감동해 다시 방문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BIFF 게스트들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다음에도 또 오겠다"고 말하곤 한다. 또한 "부산의 영화 열기에 감동했으며, 영화제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한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관객뿐만 아니라 게스트들도 즐기는 영화제가 바로 BIFF이다.

BIFF가 초청하는 게스트들의 특징은 아시아 영화의 연대를 지향하는 최대 영화제답게 우리가 흔히 볼 수 없었던 아시아권 스타와 감독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홍콩뿐만 아니라 세계 영화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동남아시아나 아랍권의 많은 영화인은 10월의 부산을 기다리고 있다. 아시아 영화인의 연대가 해마다 BIFF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아시아뿐만 아니다. 그동안 BIFF를 다녀간 동유럽이나 남미의 예술영화 감독과 세계 영화사에 발자취를 남긴 거장이 많다. 이들을 통해 아시아는 물론 세계 영화 흐름을 반영한다는 것이 BIFF가 지닌 큰 의미이다.

올해로 19회를 맞은 BIFF를 즐기며 지난 18년간 BIFF를 찾아 영화제를 빛낸 게스트들을 돌아보는 시간은 또 다른 매력이 될 것이다.


- '단골손님' 이란 영화가문
- 회덮밥 즐긴 장이모우 감독
- 4년 내리 부산서 생일 맞는 탕웨이
- ★들은 추억을 남기고

부산국제영화제(BIFF)에는 지난 18년간 수많은 영화인이 다녀갔다. 첫해 브렌다 블레신, 조안 첸을 시작으로 지난해 와타나베 켄, 모흐센 마흐말바프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까지 수많은 감독과 스타가 영화제를 빛냈다.

그들이 남긴 이야기를 담았다.


■세계 영화사의 감독들

18회 BIFF에서 만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좌)과 봉준호 감독.

1996년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긋는 영화제가 부산에서 시작됐다. 한국에서 첫 '국제'(International) 영화제가 시작된 것이다. 국제영화제에 걸맞게 그동안 BIFF에선 세계 영화사에 기록된 거장과 현재 영화사를 쓰는 감독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1990년대부터 세계 영화계의 중심에 선 이란 감독들은 BIFF의 단골손님이다. 2회 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자파르 파나히, 파라드 메흐란파 등 이란 감독 3인방이 찾아왔다. 특히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체리 향기'는 그해 영화제의 최고 인기작이었는데, 당시 촬영 중이었던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 촬영 현장을 찾기도 했다. 그는 10회와 15회 때도 BIFF를 찾아 애정을 보여줬다.

이란에는 전대미문의 영화 가문이 있다. 아버지 모흐센 마흐말바프와 아내 마르지예 메쉬키니, 그리고 세 자녀 사미라, 메이삼, 하나는 모두가 영화를 만드는 영화 가족이다. 이들은 때로는 가족 모두가, 때로는 따로따로 부산을 찾아 BIFF와 떼어놓을 수 없는 가족이다.

제3 영화의 개념을 이론화하고, 라틴아메리카 기록영화의 최고 걸작이라 불리는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를 연출한 아르헨티나의 페르난도 솔라나스 감독(3회)도 세계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감독이다. 그는 자신의 인터뷰 자료를 가져와 기자들에게 나눠주는 열의를 보여줬다.

2012년 세상을 떠난 그리스의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9회 때 부산을 찾아 회고전을 가졌다. 1970년대부터 칸과 베니스 등 수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그는 우리에게 '안개 속의 풍경' '율리시즈의 시선' '영원과 하루' 등 작품으로 큰 감동을 주었다. 그리스 감독 중에는 정치영화의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14회)를 빼놓을 수 없다.

동유럽 거장들도 BIFF를 찾았다. 지적인 영화를 찍는 폴란드의 크지스토프 자누시 감독(5·10회), 헝가리 영화를 대표하는 이스트반 사보 감독(11회)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아니면 만나기 힘든 동유럽 감독들이다.

1980년대 초 프랑스 누벨 이마주를 이끌었던 장 자크 베넥스 감독(14회), 뤽 베송 감독(16회), 1980~1990년대 영국 영화에 새바람을 일으킨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10회), 아일랜드의 닐 조던과 짐 쉐리단 감독(18회),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 감독(4회), 할리우드의 유명 감독 브라이언 싱어(14회), 올리버 스톤(15회), 쿠엔틴 타란티노(18회) 등도 BIFF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4회 폐막작 '내 책상서랍 속의 동화'로 참석한 중국 영화의 거장 장이모우 감독의 핸드프린팅.

중국 영화를 대표하는 장이모우 감독(4·15회)도 잊을 수 없다. 4회 폐막작 '책상서랍 속의 동화'로 부산을 찾은 장이모우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 직후 김동호 명예 집행위원장, 유현목 감독 내외와 점심을 먹었다. 당시 그는 "부산의 서민이 찾는 식당에서 식사하고 싶다"고 말해 예약해 놓은 식당을 취소하고 다 같이 자갈치시장 회센터의 한 식당에서 회덮밥을 먹었다. 평소 검소한 성품으로 유명한 장이모우 감독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다. 그는 올해에도 신작 '5일의 마중'으로 부산을 찾는다.

'동년왕사' '비정성시' '희몽인생' '해상화' '쓰리 타임즈' 등으로 대만 예술영화를 대표하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6·7·9·10·12·15회)은 BIFF를 자주 찾은 대표 감독이다. 또 한 명의 대만 영화의 거장인 차이밍량 감독(3·8·10·18회)도 BIFF와는 가족 같은 사이다.

■영화제의 꽃, 스타들

16회 뉴커런츠 심사위원으로 BIFF를 찾은 오다기리 조.

BIFF는 첫 개막작으로 그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은 마이크 리 감독의 '비밀과 거짓말'을 선정했다. '비밀과 거짓말'은 BIFF 개막작으로는 유일한 비아시아권 영화였다. 그리고 '비밀과 거짓말'의 주인공 브렌다 블레신과 마리안 장 밥티스트를 초청해 영화팬의 관심을 모았다. 브렌다 블레신은 개막식에 앞서 선상 기자회견을 열며 영화제의 시작을 알렸다. 영화제 산파역을 했던 김동호 BIFF 명예 집행위원장은 "요트나 유람선을 섭외하려고 했으나 결국 일반 여객선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3회에 이어 16회에 다시 찾은 프랑스의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

3회 때 처음 부산을 찾은 프랑스의 국민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는 16회 때 다시 부산을 찾았다. 첫 부산 방문에선 프랑스의 명배우로 관심을 모았을 뿐이었지만 그 이후 '피아니스트' '8명의 여인들' 등으로 국내에도 유명해지면서 두 번째 방문에서는 자신의 사진전도 열었다. 2012년에는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 주연을 맡아 우리와 더욱 친숙해졌다. 프랑스 여배우로는 잔느 모로(6회), 줄리엣 비노쉬(15회)도 잊을 수 없다.

외팔이 시리즈의 왕우(18회)를 비롯해 성룡과 홍금보(이상 9회), 장만옥(5회), 양조위(2·5·9회), 곽부성(11·17회), 임달화(14·17회) 등 홍콩 대표 배우와 오다기리 조(10·16·18회), 아오이 유우(11·15회), 우에노 주리(13회), 기무라 타쿠야(14회) 등 일본 배우들도 한국팬을 즐겁게 했다.

자신의 생일과 겹쳐 17회 BIFF 오픈토크 중 생일 이벤트를 벌인 탕웨이.

최근 '만추'의 김태용 감독과 결혼한 탕웨이는 BIFF와 인연이 유별나다. 그녀는 최근 4년 동안 BIFF를 찾았으며 17회 때는 해외 배우 최초로 개막식 사회를 맡았다. 영화제 일정이 생일(10월 7일)과 겹쳐 4년 내리 부산에서 생일을 맞았는데, 2012년에는 안성기와 함께 오픈토크를 갖던 중 생일 케이크 촛불을 끄는 이벤트도 했다. 올해는 결혼 후 국내에서 열리는 첫 공식 행사라 기대를 모은다.

세계적인 스타로는 2회 개막작 '차이니스 박스'로 참석한 제레미 아이언스가 있다. 그는 극중 캐릭터가 입었던 셔츠와 모자, 선글라스를 챙겨와 인터뷰 때 입고 등장하는 정성을 보여줬다. 조쉬 하트넷(14회)은 이병헌과 함께 출연한 '나는 비와 함께 간다'로 찾아왔다.


# 이용관 BIFF 집행위원장이 꼽은 '게스트 5'

- 산소호흡기 달고다닌 스즈키 감독
- 열정적인 춤 선보인 줄리엣 비노쉬

1 스즈키 세이준 감독

일본의 거장 스즈키 세이준 감독은 10회 때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으로 참석했다. 당시 그는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는데, 이동식 산소호흡기를 끌고 다니셨다. 그럼에도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 그의 모습에 많은 관객이 깊은 인상을 받았다.

2 에드워드 양 감독

12회 BIFF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는 그 해 7월 암으로 타개한 에드워드 양 감독이었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부인은 크나큰 슬픔에도 불구하고 아들 제리 양과 함께 부산을 방문했다. 수상은 부인과 아들 제리 양이 대신했고, 시상식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참가자가 많았다.

3 키엔체 노르부 감독

부탄의 고승이자 영화감독인 키엔체 노르부는 8회 때 '여행자와 마법사'로 부산을 찾았다. 당시 키엔체 노르부 감독의 인품에 매료된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지난해에 다음 작품 '바라: 축복'이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제가 수행 기간과 겹쳐 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했다.

4 빔 벤더스 감독

프랑스 영화배우 줄리엣 비노쉬(좌)의 핸드프린팅. 오른쪽은 김동호 명예 집행위원장.

5회 때 참가했던 빔 벤더스 감독은 2000년 10월 7일, 부산극장에서 '밀리언 달러 호텔'의 상영이 끝난 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예정시간 30분을 훌쩍 넘기고, 무대에 앉아 이후에도 1시간이 넘도록 관객과 이야기를 나눴다. 모든 관객이 그의 인품과 열정에 감동했다는 후문이다.

5 줄리엣 비노쉬

15회 때 게스트였던 프랑스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는 와이드 앵글 파티에 참가해 김동호 BIFF 명예 집행위원장과 열정적인 춤을 췄다. 세계적인 톱스타의 소탈함과 열정에 모두가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