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포드를 서부극의 아버지로만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모뉴먼트 밸리, 존 웨인을 비롯한 포드적인 남성들, 황야를 달리는 말 무리와 스크린을 가득 채운 먼지가 포드의 영화 세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를 서부극이라는 장르의 대가로 한정 짓기에는 포드의 영화적 세계가 넓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도망자'(1947)의 신부가 겪는 신앙의 여정, '태양은 밝게 빛난다'(1953)의 늙은 판사가 보여준 인간다움의 정의, '청년 링컨'(1939)에서 무거운 짐을 진 영웅, '순례여행'(1933)의 꽃다발이 주는 감정의 파동, '네 아들'(1928)의 어머니가 겪는 상실과 슬픔을 넘어서는 감사의 기도 등 땅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영화들은 서부라는 풍경에 제한되지 않는다.

존 포드를 둘러싼 오해와 편견을 벗겨내기 위해 평생 그의 영화에 매달려온 태그 갤러거가 영화의전당을 찾았다. 존 포드에 관한 최고의 연구서 'John Ford:The Man and his films'를 쓴 그가 특별 강연에서 들려준 이야기는 포드를 사랑하는 팬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듣는 강연에 익숙한 관객에게 영상물을 보면서 진행하는 강연이란 참신함도 놀라웠지만, 특별한 인상을 받은 것은 갤러거 또한 포드처럼 아일랜드 후손이라는 사실이다.

평생 아일랜드인이라는 자긍심을 지녔던 포드와 같은 뿌리를 지닌 영화학자의 만남은 운명적인 끌림이나 사랑에 빠진 감정처럼 다가왔다. 고집스럽고 자존심이 센 반면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을 지니고 있고, 저항심이 강하고 다혈질이지만 활달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면을 지닌 이들의 기질이 포드의 영화에서 발견된다. 그의 영화에 늘 등장하는 술주정뱅이나 껄껄거리면서 웃는 호방한 사람, 덩치는 크지만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농담하는 장면을 마주하면 마초의 대명사이자 보수적인 노인이라고 오해받았던 포드가 실은 사려 깊고 친절한 사람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갤러거 또한 권위적이거나 근엄한 학자의 모습이 아니라 장난꾸러기 같은 면과 더불어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가 직접 만든 영상과 꼼꼼한 분석, 성실한 학자의 자세는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무엇보다 정말 좋아하는 감독의 인간적인 면모와 영화적 성취, 편견을 바로잡으려는 진지한 접근을 육성으로 전달받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포드는 꽃과 나무를 사랑했으며 진정으로 대지를 사랑한 감독이었다. 그의 인물들이 풀숲을 걸어가거나 물끄러미 강을 바라보는 장면은 그 단순한 제스처만으로도 포드적인 생기를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마음에 특별한 상이 맺히도록 한다. 소박한 꽃을 손에 든 여인들의 모습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무덤가에 꽃을 놓아두는 행동에서 살아감과 죽음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배우들의 눈동자를 포착하는 빛과 회화적으로 조율된 화면의 아름다움, 달리는 말의 역동적인 리듬과 왈츠를 추는 커플의 움직임, 사람들의 긴 행렬과 넓은 지평선이 주는 숨 막히는 감동과 연결된다.

존 포드를 만난 시간과 그를 사랑하는 관객이자 학자인 태그 갤러거와의 만남을 통해 미지의 세계와 조우할 때의 기쁨과 감사함을 배우게 된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