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만 한편에 자리 잡았던 '시네마테크부산'이 영화의전당으로 옮긴 후 세 번째 여름을 맞고 있다. 시네마테크부산의 대표 특별전인 '월드시네마'가 시작되면 비로소 봄이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섬머 스페셜'이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준다는 점을 기억하는 관객이 많으리라 믿는다. 장소는 옮겼으나 시네마테크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을 생각하면 '시네마테크부산'의 영화적 숨결은 여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상반기 시네마테크부산의 특별전이나 회고전은 어떤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상반기에 관객과 만난 프로그램은 여성에 관한 영화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여성에 관한 독특한 시각을 지닌 감독들의 영화와 여배우들이 스크린에서 빛을 발하는 영화들로 나눌 수 있다. 혹은 감독과 여배우의 놀라운 협업이 이루어지는 영화가 되기도 한다.

'3인의 여배우전'을 통해 동시대 활발한 활동을 하는 여배우가 다양한 국가와 제작 시스템 안에서 그녀들의 연기를 통해 변주되는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고, '조셉 폰 스턴버그 회고전'에서는 그의 페르소나인 마를리네 디트리히와 함께했던 일곱 편의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시네마테크 팬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은 여성의 마음에 관한 한 가장 예민한 촉감을 지녔던 그의 여성상을 통해 정념과 사랑, 증오와 집착에 이르는 감정적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조셉 맨케비츠 회고전'에서 상영된 영화들은 뛰어난 이야기꾼인 감독의 면모를 확인함과 동시에 연극 무대나 영화 현장에 속한 여성들을 통해 삶에 관한 은유적인 표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감독들의 영화에 새겨진 여성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시간의 흐름을 견뎌냈기에 더욱 특별한 순간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여배우들의 연기가 그 감독의 영화적 숨결을 형성한 것이다. 그녀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몸의 기울어진 각도, 나란히 길을 걷다가 비스듬히 뒤를 돌아보는 순간 등 유려한 움직임 중에서 특정한 감정을 환기하거나 감독만의 리듬을 각인하는 영화적 경험을 제공한다. 관객들은 영화가 쌓아왔던 감정과 분위기를 점층적으로 넓게 펴거나 응축된 공간 안에서 표출되는 정념의 세계와 만나게 된다.

전설적인 스타 마를리네 디트리히가 육화한 스턴버그의 세계는 희미한 빛들이 그녀를 감쌀 때 숨 막히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또 얼굴에 집중한 조명으로 인해 데드마스크에 맞먹는 창백함이 스크린에 등장할 때의 기이함은 낯선 감정을 품도록 만든다. 디트리히가 노래를 부르면서 서서히 걸음을 옮기는 단순한 동작을 통해 극중 인물과 관객을 은밀하게 유혹의 시선으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미키오와 다카미네 히데코의 만남은 함께 나란히 걷거나 앞서 걷던 사람이 기다려주는 멈춤에서 미키오의 세계가 구현된다. 이와 더불어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나 번개, 하얗게 쌓인 눈처럼 기상의 변화에 따른 감정적인 변화가 삶의 비애까지 닿는 순간과 마주할 때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이 스크린에 불멸의 존재로 새겨지게 된다. 영화평론가

(※박인호=영화평론가. 부산영화평론가협회 이사로 활동하며, 부산독립영화협회 영화평론잡지 인디크리틱 편집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