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폭력의 본능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동시대에 존재했던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 중에서 크로마뇽인이 인류의 조상이 된 이유는 더 폭력적이었기 때문이라는 학설이 있다. 더 폭력적이고, 더 비정한 종족이 살아남는다는 것. 그렇다면 앞으로도 가능한 일이 아닐까? 사이코패스가 인간과는 다른 종이고, 타인을 희생시키고 살아남는 일에 유능하기에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 그렇다면 '더 퍼지' 같은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미국의 '새로운' 건국의 아버지들은 '퍼지'를 만들었다. 일 년에 한 번, 12시간 동안은 살인을 포함한 모든 폭력이 인정된다. 그러자 미국의 범죄율은 단 1%로 줄었다. 미운 사람,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퍼지'를 기다리면 된다. 가해를 해도, 사람을 죽여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단순히 이해관계만이 아니라 일 년에 한 번 마음껏 폭력을 발산할 수 있기에 '폭력 본능'이 있더라도 조금만 참으면 된다. 서툴게 범죄를 저지르다 감옥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까.

'더 퍼지'는 흥미로운 설정을 만들어 놓고, 하룻밤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심플하게 풀어놓는다. 샌딘 가족은 선량한 사람들이다. 남매인 조이, 찰리와 함께 퍼지의 날을 맞은 제임스와 마리는 강력한 보안 시스템으로 외부와 차단하고 조용히 밤을 보내려 한다. 폭력을 발산하거나 누군가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런데 퍼지를 반대하는 평화주의자 찰리가 누군가에게 쫓기던 흑인을 집에 들여놓으면서 문제가 생긴다. 그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사람들이 샌딘의 집에 몰려들고, 제임스는 결단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퍼지'는 과연 효과적일까? 영화 속에서도 논란은 계속된다. 방범 시스템이 잘 갖춰진 부유층 지역에서는 별일이 없지만, 도심과 빈민층에서는 학살과 약탈이 진행된다. 퍼지는 사회의 약자, 빈민층 등을 합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계략이라는 비판도 있다. '더 퍼지'는 그런 비판적 주장에 무게를 싣는다. 쫓기는 남자는 흑인 홈리스다. 그를 사냥하는 사람들의 리더는 금발의 백인이고, 아이비리그 대학생 같은 깔끔한 스타일이다. 당신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니 해치지 않겠다. 흑인 홈리스만 내어준다면. 퍼지가 실행되는 미국 사회는 우리와 그들을 확실하게 분리하는, 승자만이 모든 것을 독식할 수 있는 사회다.

물론 같은 '우리'라고 해서 시기와 질투가 사라질 수는 없다. 샌딘은 방범 시스템을 파는 일을 한다. 뛰어난 실적을 올려 많은 연봉을 받고 있고, 동네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질투한다. 밉고 때로는 죽이고 싶다. 기회만 있다면, 처벌받지 않는다면, 기꺼이 죽일 것이다. '퍼지'는 그들의 사악한 본능을 자극한다. 그렇다면 '퍼지'를 합법적으로 만들어 놓은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인간의 폭력성을 가끔씩만 발산시킬 수 있다면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런 발상은 결국 소수를 위한 안전한 사회일 뿐이다. 퍼지의 날이 되면, 방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이들은 사냥꾼이 되거나 희생자가 되거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더 퍼지'는 굳이 결론을 내리거나 누가 옳다고 손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샌딘 가족 역시 피해자일 뿐이고, 세상은 어떻게도 바뀌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결론으로 치닫는다. 착하게 살고, 양심을 지키며 살다 보면 결국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 '퍼지'가 있거나 없거나 마찬가지로.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