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노라는 패션 디자이너가 있다. 1956년에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열었고, 미국의 패션지 보그에 화보가 실리고, 뉴욕 메이시 백화점 1층에서 노라노의 의상이 전시되기도 했다. 윤복희 최은희를 비롯한 당대 최고의 여배우, 가수들이 영화와 무대에서 입는 의상을 디자인했고, 최초의 기성복을 만들어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노라노'는 1928년생인 노라노의 디자이너 인생을 되짚으며, 지난해 열린 60주년 기념전 '라 비앙 로즈'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9세에 이혼하고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간 노명자는 '인형의 집'에서 집을 나온 '노라'로 이름을 바꾼다. 자신의 과거와 단절하고, 여성을 바라보는 당대의 편견에 맞서겠다는 의지가 담긴 이름이었다. 전후의 한국에서는 거추장스러운 한복 대신 일종의 '작업복'이 필요했고 대량으로 생산되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노라노는 시대의 요구에 맞는 기성복을 만들었고, 시대를 앞서 가는 당당한 여성들을 위한 옷을 만들었다. 그건 결코 '화려한' 업적이 아니다. 노라노는 '라 비앙 로즈'라는 기념전 제목을 불편해한다. 패션 디자이너는 엄청난 중노동이고, 자신은 치열하게 싸워서 모든 것을 쟁취했다는 자의식. 여자를 멋있고 당당하게 만드는 옷이면서도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이어야 한다는 게 그녀의 패션 철학이었다. 노라노는 선구자였고, 당당한 여성이다.
'노라노'를 보기 전부터 궁금한 것들이 있었다. 외국의 패션 디자이너 이름은 알아도 노라노는 모른다. '노라노'를 보며 과거에 엄청나게 유명했고 실력도 인정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렇게 유명했던 노라노를 지금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속 모델이나 패션 관계자들도 그녀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그렇게 유명했는데, 왜 우리는 모르지? 나 역시 그것이 궁금했다. 하지만 '노라노'는 그 이유에는 관심이 없다. 전성기의 업적이나 추억들을 되살리는 것에만 집중한다.
영화에서 모든 것을 다 보여줄 필요는 없다. 한 인물의 모든 생애를 추적할 필요도 없다. 감독이 말하고 싶은 부분에 집중해 그 부분만을 해명하는 것으로 영화는 가능하다. '노라노'는 그녀가 했던 '업적'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5·16 직후 새벽에 끌려가 심문받는 장면을 굳이 재연장면으로 넣은 것은, 남성들의 세계에서 꿋꿋하게 이겨낸 그녀의 의지를 보여주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말은 '노라노'에서 수없이 반복된다. 노라노의 의지도 알겠고, 그녀가 당당한 여성으로 싸웠다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노라노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을 뿐이다. 기념전을 준비하던 이들이 말한다. 과거를 되살리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 노라노가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고 싶다는 것. 동의한다. 그렇기에 지금도 현역에 있는 노라노가 왜 우리들의 시야에서, 혹은 기억에서 사라졌던 것인지 그 이유를 더더욱 알고 싶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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